3월, 담장을 넘어온 개나리가 새 학기를 알리지만 학교 현장의 공기는 여전히 비장하다. 며칠 전, 아내는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은 휴대폰을 꺼내 새 유심칩을 끼웠다. 몇 년간 부장 보직을 맡아오다 다시 1학년 담임을 맡게 된 아내의 자구책이었다. 이제 아내의 가방 속에는 두 개의 휴대폰이 들어 있다. 하나는 가족과 친구의 안부가 담기는 일상의 창이고, 다른 하나는 학부모와 학생의 호출이 쏟아질 업무의 전장이다. 34년 차 교사인 나에게도 그 풍경은 낯설면서도 아팠다. 퇴근 후 집에서도 휴대폰 알람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야 했던 지난 세월의 상처가 그 낡은 기기 속에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밤 11시에 걸려 오는 전화 왜 우리 시대의 교사들은 두 개의 번호를 가져야만 할까. 기술의 진보는 '연결의 과잉'을 낳았고, 공적 업무와 사적 생활의 경계는 처참히 무너졌다. 밤 11시에 걸려 오는 전화나 무단 촬영, 녹음은 이제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교사의 인간적 존엄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절박함 속에 서울특별시교육청이 내놓은 '2026 교육활동보호 매뉴얼'은 교사들이 스스로 휴대폰을 두 개씩 들고 다녀야 하는 이 서글픈 '각자도생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제도적 선언이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