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냐'...
농촌에선 이 질문의
의미가 다른 거 아세요?

농촌에서 '밥 먹었냐'는 단순 끼니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식사 여부를 넘어 일상이 무탈한지 걱정이 담긴, 안부를 묻는 인사다. 모자란 형편에 각자의 집에서 찬거리를 모아 함께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곧 서로의 건강을 살피는 일과 같다. 밥상을 가운데 두고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누던 대화는 고민 상담과 마을 회의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웃집에 수저가 몇 벌 있는지 속 사정을 빼곡히 알수록 마을은 건강해져 갔다. 하지만 농촌의 고령화, 인구 감소 등으로 밥상의 온기가 빠져나가면서 안부 묻는 일은 점차 줄었다. 밥 먹는 가치가 흐릿해질 때쯤 마을 밥상에 온기가 찾아왔다. 충북 옥천군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단의 지원으로 면 지역 먹거리 복지를 위한 공동체식당이 시작된 것. 안남면은 안남두레상사회적협동조합이 맡아 일주일에 두 번 21개의 마을에 반찬을 배달한다. 매주 찾아오는 따뜻한 국과 반찬에 "반찬 오는 날에는 하던 일 다 제치고 경로당에 간다"는 주민들이다. 주민들을 모으고 밥 먹는 날의 마을 문화로 정착하기까지. 1년 넘는 시간 동안 마을 밥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지속가능한 방법은 무엇인지, 공동체식당 운영자와 이용자에게 들어봤다. "수요일은 밥 먹는 날!" 오전 11시, 안남면 청정리 심청마을회관에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앉을 자리가 모자랄 만큼 주민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마치 명절 풍경을 보는 듯하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모인 20여 명의 주민들이 주변을 살피며 안 온 이는 없는지 살핀다. 그리곤 마을회관 안쪽에 정리해 놓은 여분의 식탁과 의자를 꺼내 점심 준비를 시작한다. 매주 수요일은 심청마을의 '점심 먹는 날'. 한창 바쁠 농번기에도 참석할 만큼 마을의 중요한 약속이다. 이제는 없어선 안 될 점심 약속은 지난해 1월 당시 이장이었던 정진용씨가 주민들에게 공동체식당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마을에 반찬 배달해주는 공동체식당이 있다고, 같이 밥 먹으면 좋지 않겠냐고 그러더라고요. 특별히 손 거들 일 없으니까 좋다고 했죠. 그렇게 한두 번 먹다 보니 주민들이 모였고 자연스레 수요일은 다 같이 밥 먹는 날이 됐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이면 25명쯤 돼요. 그전에는 마을에 모일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수요일이면 무조건 마을회관으로 모여요." (황영옥씨, 69) 막 배달된 반찬통을 열자 잡채, 소고기뭇국, 봄동겉절이, 시루떡이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마을회관 가득 퍼진다. 반찬 배달 시간에 맞춰 지은 밥도 때마침 완성돼 모두가 그릇에 음식을 담는 데 손을 보탠다. 전순례(70)씨도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평소 마을 식사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그는 공동체식당 덕분에 밥하는 부담을 덜었다. "공동체식당 이전에 이웃 마을에서 함께 밥 먹는 시간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우리 마을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생업과 동시에 마을 식사를 책임진다는 게 부담이었어요. 그런데 반찬 배달이 오니까 부담이 없어요. 밥만 하면 되고 양이 부족하면 각자 집에서 반찬 조금씩 가지고 오면 되니까요. 덕분에 모이는 일이 즐거워요." 국 한 가지와 반찬 두 가지, 후식이 한 묶음으로 오는 반찬에 밥과 각자 가지고 온 반찬을 곁들이면 완성되는 한 상. 이날은 노인회장 정재영(75)씨가 준비한 막걸리가 더해져 식사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었다. "노인회장 수당으로 떡과 한과 같은 간식을 준비해요. 공동체식당으로 얼굴 보는 시간이 늘다 보니 이렇게나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을 일 잘하라고 받는 돈을 제 목적에 쓰는 것 같아 저도 좋고, 같이 먹는 즐거움이 있어 또 좋아요." 마을의 최고 어른인 박순분(98)씨가 수저를 들자 식사가 시작됐다. 같은 식탁에 앉은 유준봉(64)씨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박순분씨를 살핀다. "청력이 약한 거 말고는 건강하세요. 대충 끼니를 해결하는 어르신이 많다고 들었는데, 박순분 어르신은 가리는 거 없이 정말 잘 드세요. 다행이에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모여서 별일 없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그게 가장 좋아요. 밥이 그냥 밥이 아니에요. 이웃의 건강을 살피는 일도 포함돼 있어요. 또 농사를 지으면서 어려운 점을 같이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해요. 2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는데 어르신들의 조언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이런 자리가 생겨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유준봉씨)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친 최금선(76)·남명복(66)씨가 집으로 가지 않고 거실 한쪽에 자리 잡는다. 식탁에서 마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느라 바쁜 두 사람이다. 무슨 이야기를 저리 즐겁게 하나 자세히 들어보니 밥에 대한 이야기다. "모이지 않으면 대충 먹게 돼요. 김치 하나에 밥, 물에 밥 말아 먹는 식으로요. 그것도 귀찮아서 거르는 경우도 있어요. 수요일마다 마을회관에 오면 고기와 채소가 골고루 들어간 반찬, 따뜻한 국이 있어요.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남명복씨)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