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에는 나비가 날아들고, 하늘에는 수박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벌들은 두 팔을 벌려 춤을 추고, 잠자리는 나팔을 불며 허공을 가른다. 고래의 뱃속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연주를 한다. 이 낯설고도 따뜻한 풍경은 현실의 장면이 아니다. 강원 강릉의 작은 화실 벽을 가득 채운 그림 속 세상이다. 아이들이 톡톡 튀어나올 듯한 화실에서 노화백이 붓을 들고 있다. 도시의 소음과 화려한 전시장을 뒤로한 채, 어린 시절의 기억과 따뜻한 상상력을 화폭 위에 풀어놓는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맞닿는 3월 중순, 여든다섯의 박동일 화백을 만났다. 산골에 피는 동심 강릉 연곡천변에 자리한 작은 작업실. 멀리 오대산 자락이 펼쳐지고, 연곡천의 물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창밖으로는 논과 밭이 그림처럼 이어지고, 산허리의 소나무 숲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한 폭의 풍경화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곳이다. "얼마나 좋아요. 평생 머물고 싶지 않아요? 개구리가 울고 나비가 날아들 때 한번 와 보세요. 이곳에 오면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박동일(85) 화백은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자연의 소리와 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흐르는 이곳은 그에게 삶의 터전이자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다. 화백은 화실에 들어서자마자 붓을 든다. 여든다섯의 나이에도 그의 손끝에는 망설임이 없다. 물감을 머금은 붓이 화폭 위를 지나갈 때마다 오랜 세월 다져온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온다. 붓질이 이어질수록 캔버스에는 별빛과 상상의 존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그림이 완성된다. 어린이들이 보면 금세 빠져들 것 같은 신비로운 화폭이다. 화폭 속 기억과 동심의 세계 벽면에는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듯한 동물들이 가득하다. 꽃과 새들은 화면 곳곳에서 생기를 머금은 채 주인공처럼 자리 잡고 있다. 밝고 따뜻한 색채와 자유로운 형상이 어우러지며 공간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캔버스에는 어린이와 꽃, 악기, 나비, 과일과 채소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화가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길어 올린 장면들이다. 일상의 사물들은 그의 손을 거치며 어린 시절의 감정과 상상력을 품은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 화폭 위에 펼쳐진다. 작품 속에는 배와 비행기 같은 여행의 이미지들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한 화면에서 만나며 어린 날의 설렘과 호기심을 떠올리게 한다. 붓을 잠시 내려놓은 화백은 자신이 그려 온 그림의 소재에 대해 조용히 말을 건넨다. "동심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창작의 가장 중요한 원천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상상하는 힘이 있지요. 저는 그 순수한 감정을 작품 속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먼저 감각으로 다가오고 그 다음에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선명한 색채와 소박한 형태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잊고 지냈던 기억을 조용히 떠올리게 한다.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오래된 동화책을 다시 펼쳐 보는 듯한 느낌이 스며든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