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한번으로 사랑 빠진
'입문용 카메라'의 반전

첫차의 아침, 빛을 그리며 서울로 향하다 찰칵, 찌이잉.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3월의 첫 일요일 공기를 가르는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열차의 문이 열린다. 플랫폼에 서서 입김을 한 차례 내뱉자 하얀 안개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가방 끈을 고쳐 매며 첫차에 몸을 실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서울. 7년이라는 긴 세월을 인내하며 세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는 친구의 출판기념회에 가기 위해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책 한 권은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생(生)에서 떼어낸 한 조각의 살점이며, 밤마다 꾹꾹 눌러 담은 고독의 기록이다. 7년 만에 세 번째 결실을 본 친구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 치열했던 고뇌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봐 온 나로서는, 그가 맞이할 찬란한 저녁의 자리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여정이었다. 열차가 속도를 높이자 창밖으로 겨울 끝자락의 풍경이 길게 늘어지며 스쳐 지나갔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들판과 낮은 지붕 위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내리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가 여전했지만, 그 서늘함 속에는 곧 다가올 봄의 기운이 미세하게 섞여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플랫폼은 이미 각자의 삶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아침 햇살이 창을 뚫고 번져 나왔다. 사람들은 그 황금빛 먼지 속을 가로질러 계단을 오르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기며 빠르게 흩어졌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가방 안을 가만히 더듬었다. 오늘의 산책을 위해 준비한 필름 두 롤이 손끝에 닿았다. 일상의 따스한 갈색 톤을 입혀줄 Kodak ColorPlus 200, 그리고 푸른 밤의 도시 불빛을 영화처럼 기록해 줄 Kodak Vision3 500T. 이 두 롤의 필름은 오늘 내가 만날 서울의 낮과 밤을 온전히 책임질 것이다. 그리고 내 손에는 오늘의 주인공, Canon EOS Kiss가 들려 있었다. 필름 시대의 황혼기에 태어난 Canon EOS Kiss 사진가들 사이에서 이 카메라는 종종 묘한 평가를 받는다. 묵직한 금속 바디에서 느껴지는 클래식한 '손맛'이나, 태엽이 감기는 듯한 아날로그적 낭만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EOS Kiss는 너무나 매끈하고 현대적이다. 플라스틱 바디의 가벼움과 전자식 인터페이스는 언뜻 보기에 초창기 디지털카메라와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실제로 이 카메라는 필름 시대의 황혼기에 태어났다. 훗날 캐논의 보급형 DSLR(디지털 일안리플렉스 카메라) 시장을 평정한 EOS 300D가 바로 이 디자인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으니, 사람들의 오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캐논은 필름의 시대가 저물어갈 무렵, 카메라를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대중의 일상적인 도구로 변모시키려 했다. EOS Kiss는 거창한 예술을 논하기보다는 여행자의 가방 옆 주머니에 슬쩍 꽂혀 있기를, 혹은 아이의 첫 걸음마를 찍기 위해 거실 한구석에 놓여 있기를 바랐던 카메라였다. 투박한 로망은 부족할지 몰라도,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오늘처럼 긴 하루를 걷고 보고 기록해야 하는 서울의 산책자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동반자는 없을 것이다. 오늘 이 가벼운 바디에 짝을 지어준 것은 Canon EF 40mm f/2.8 STM 렌즈다. 이 렌즈는 디지털 시대에 설계된 최신식 렌즈지만, 캐논의 축복이라 불리는 EF 마운트 덕분에 수십 년 전의 필름 바디인 EOS Kiss와도 완벽하게 호환된다. 이 조합의 가장 큰 미덕은 단연 '기동성'이다. 소위 '팬케이크 렌즈'라 불릴 만큼 얇고 가벼운 외형 덕분에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장비의 무게감이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사진기라는 도구가 몸의 일부처럼 느껴질 때, 사진가는 비로소 피사체와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40mm라는 화각은 참으로 묘한 경계에 서 있다. 광각의 시원함을 가진 35mm보다는 조금 더 밀도 있고, 표준의 정석이라 불리는 50mm보다는 시야가 조금 더 트여 있다. 이 5mm 혹은 10mm의 미세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안정감은 대단하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 그것은 타인에게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도시의 풍경 속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산책자의 시선과 닮아 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