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은 1892년 11월 1일, 충청도 삼례에서 거대한 민중집회를 열었다. 최시형의 뜻에 따라 가을걷이가 끝난 뒤의 집회여서 인근의 동학도는 물론 전국 각지의 책임자들이 모이고 일반 백성들도 참여하여 수천 명에서 1만여 명이 모인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처형당한 교조의 죄명을 벗기고 원한을 풀어줌으로써 포교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도인들과 왕조체제에서 억울하고 수탈당하며 살아온 백성들이 자진해서 참여한 것이다. 최시형은 교조의 신원을 통해 동학의 합법성을 쟁취하고, 만인평등·시천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삼례집회에 무척 공을 들였다. 삼례집회는 손천민을 상소대표자로 삼아 충청도 관찰사 조병식과 전라도 관찰사 이경직에게 두 가지를 청원하였다. 하나는 유교는 공자의 유학이 아닌 종교로 인정하고, 탄압이 심하던 천주교, 야소교(예수교)도 인정하면서 동학만 배격탄압하는가, 둘째는 서리와 포졸들이 선량한 도인들을 탄압·살상하는 비인도성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전체 내용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