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女, 40살 넘자 “병원 같이 갈 사람 없네요”…돌봄 공백 ‘불안’

중년 비혼 여성 1인 가구가 돌봄 공백의 불안을 겪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족 중심 돌봄 체계 밖에서 실질적인 돌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혈연 가족, 친한 친구 등을 돌봄의 대안으로 찾고 있다. 사회건강연구소는 지난 17일 ‘중년 비혼 1인 가구 여성의 사회적 관계와 돌봄’을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열었다. 연구는 지난해 5~6월 40~50대 비혼 여성 1인 가구 10명을 1대1 심층 면접한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됐다. 참여자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해왔으며, 혼자 거주한 기간은 7년~30년이다. 참여자들은 나이 듦에 따른 체력 약화와 질병, 갱년기와 완경 같은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자신도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오랫동안 돌봄 제공자로 여겨졌지만, 정작 자신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참여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은 위기 상황의 고립이었다. 수술 뒤 집에 혼자 있을 때 갑자기 쓰러지면 어떡하나 걱정했고, 보호자 동행이 필요한 검사나 시술은 부탁할 사람이 없어 망설였다. 내시경 검사를 위해 수면마취를 포기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참여자 대부분은 돌봄이 필요할 때 최대한 혼자 해결했지만 긴급한 순간에는 ‘혈연가족’에게 돌봄을 요청했다. 한 참여자는 “검사를 받아야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언니밖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더라”며 “가족 아닌 다른 사람한테 뭔가 부탁할 엄두가 안 났다”고 고백했다. 사회적 관계가 많다는 한 참여자 역시 “(돌봄을) 요청하면 해줄 사람은 많은데 도움을 청할 것 같진 않다”며 “어쩔 수 없다면 가족이 (돌봄 요청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휴대전화 긴급전화 연락처에 가족 전화번호를 연결해둔 사례도 있었다. 돌봄이란 거창한 간병만이 아니라, 위급할 때 곁에 와주는 일이라는 인식도 확인됐다. 사고가 생기거나 노후에 질병을 앓게 될 경우를 미리 생각해 친구들 사이에 미리 돌봄을 약속한 경우도 있었고, 이동이 쉬운 지인에게 미리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려준 참여자도 있었다. “집에 아무도 없잖아”…업무 과중되기도 참여자들은 중년 1인 가구가 청년과 노년 중심 정책 사이에서 비가시화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 출산·양육 중심 가족정책이 비혼 여성을 돌봄 사각지대로 밀어낸다는 지적도 나왔다. 직장에서 “너 집에 아무도 없는데 왜 빨리 가?”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육아를 하지 않는 비혼 직원에게 업무가 몰린다는 주장도 나왔다. 비혼 여성은 돌봄 책임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되지만, 그만큼 더 일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발표에서는 중년 비혼 여성 1인 가구가 부모를 돌보는 책임은 지면서도, 정작 자신이 돌봄을 받을 권리는 제도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참여자들은 자신을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는 첫 세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자기 몸을 챙기고 생활을 통제하는 자기 돌봄이 더욱 강조되지만 이는 기댈 곳 없는 현실이 만든 생존 전략에 가깝다. 돌봄 공백은 결국 돈과 보험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참여자 다수는 위기 상황에 대비한 현실적 수단으로 보험과 시장 서비스를 꼽았다. 가족 밖에서 ‘돌봄’ 찾아 그렇다고 돌봄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참여자들은 친구와 동료, 단골 가게, 운동 시설, 지역 프로그램 같은 관계 속에서 일상적 돌봄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었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동료들이 죽과 반찬을 보내준 경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예상 밖의 사람들로부터 위로받은 경험도 나왔다. 돌봄이 반드시 가족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이 바라는 관계는 전통적 가족처럼 과도한 개입과 의무를 전제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면서도, 아프거나 위급할 때는 곁으로 와줄 수 있는 느슨한 관계였다. 가까운 친구와 같은 동네에 살고 싶다는 바람, 비혼 여성끼리 함께 사는 주거 모델에 대한 관심도 이런 인식과 맞닿아 있었다. 지역사회 안에서 안부를 묻고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의 필요도 함께 제기됐다. 연구진은 공공 안전망 강화와 다양한 돌봄 모델 발굴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병원 동행 서비스 ▲응급 상황 연락 체계 ▲중년 1인 가구를 포함한 돌봄 정책 재설계 ▲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장소 지원 등이 구체적 과제로 꼽혔다. 발표회에서는 제도 못지않게 문화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신세 지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의존을 부끄러워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의존의 부담감을 넘어서지 않으면 결국 혈연가족에 의한 돌봄 의존을 더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연구보고서 전문은 사회건강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