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진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그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진다는 방증이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이 "5·18 북한군 개입설 등 가짜 뉴스를 강력히 응징"하고, 역사 왜곡 독버섯의 뿌리 뽑겠다고 공개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역사를 부정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5.18 광주를 바깥세상에 알린 한국인 영상 기자를 소개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서방에 최초로 타전한 사람은 독일 제1공영방송(ARD) 소속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로 알려져 왔다.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 영상에 담은 외신 기자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그런데 최근 발굴된 사료와 그 검증 과정을 통해 지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수정할 필요가 생겼다. 독일인 힌츠페터 기자보다 앞서 광주에 들어가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과 그동안 군이 조직적으로 부인해 온 '착검'의 진실을 제일 먼저 카메라에 담은 기자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국 CBS 서울지국의 유영길 영상 기자다. 유영길 기자의 광주 도착과 최초 촬영의 증거 '동구청 상황일지' 광주 항쟁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10일간 진행되었다. 특별히 주목할 기간은 발단이 된 5월 18일 일요일부터 도청 앞 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 수요일까지 나흘이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휴교령 소식이 전해지자 전남대학교 재학생들이 5월 18일 오전 일찍부터 학교 정문에 모여서 시위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날 새벽 제7공수여단이 미리 전남대와 조선대에 투입된 터라 바로 진압에 돌입했다. 뿔뿔이 흩어진 전남대 학생들은 시내 중심가인 금남로에 집결했고 다른 대학 학생들과 청년들이 합세했다. 공수부대원들은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진압봉과 소총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하고 대검으로 찌르는 등 잔인한 진압을 이어갔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그렇게 개시되었다. 둘째 날인 5월 19일 월요일 새벽 1시경 제11공수여단 병력이 광주에 도착했다. 일요일에 있었던 시위에서 계엄군의 잔혹함을 목격한 시민들이 오전 9시경부터 시내로 몰려들었다. 시민들의 가세로 시위 규모는 훨씬 더 커졌다. 가톨릭센터 앞에 2000여 명, 충장로 일대에 2000여 명의 시위대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공수부대원들에게 격렬하게 저항했다. 한편, 공수부대원들은 금남로 양쪽에서 시위대를 포위하고 안쪽으로 몰아넣으며 잔인하게 진압했다. 이날 오전 11시경 최초의 희생자가 나왔다. 청각장애인이었던 구두 수선공 김경철씨(당시 27세)는 시위를 구경하다가 공수부대원에게 붙잡혀 온몸을 구타당해 숨졌다. 대낮의 거리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살육제를 펼치는 동안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던 영상 기자가 있었다. 비상계엄 확대 조짐이 감지되자 CBS 서울 지국은 일본 여행 중이던 유영길 영상 기자에게 급히 귀국 지시를 내린다. 돌아오자마자 5월 18일 저녁 바로 광주에 내려갔다. 그래서 유 기자는 5월 19일에 있었던 공수부대원의 잔혹한 진압 과정을 생생하게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한 시점은 5월 19일 오전 10시경부터, 장소는 금남로 일대와 광주상공회의소 5층 옥상이었다. 당시 광주 동구청이 작성한 상황일지는 그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료다. 유영길 기자 촬영 원본 영상 6분 30초 내용 유영길 기자가 5월 19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촬영한 6분 30초 분량의 원본 영상은 광주 항쟁의 초기 전개 상황을 정밀하게 타임라인 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 오전 10:00~10:20 (금남로 거리) : 차량 통제 직전의 긴박한 거리 상황과 공수부대원들이 시위대를 추격하는 과정을 지상에서 촬영했다. 계엄군이 이때부터 착검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 오전 10:25~10:35 (광주상공회의소 5층 옥상) : 금남로 일대의 시민들이 군 병력이 배치되는 것을 지켜보는 긴장된 순간을 기록했다. ▲ 오전 10:35~12:00 (가톨릭센터 앞 및 금남로) : 다시 금남로로 내려와 공수부대원들이 차량에서 하차하여 시민들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장면을 근접 촬영했다. 착검한 공수부대원들의 집단 공격으로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 시민들의 모습, 팬티만 입힌 채 연행하는 장면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은 5월 18일이었지만 본격적인 시민 항쟁은 5월 19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오전 금남로 일대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폭력을 가했을 때 ENG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기록한 영상 기자는 유영길이 유일했다. 유 기자는 촬영한 영상을 가지고 당일 오후 서울 사무실로 돌아왔다. 도쿄행 저녁 비행기 편에 해당 영상을 CBS 도쿄 지국으로 보냈고, 급행으로 미국 본사에 전달되었다. 유 기자가 찍은 영상은 미국 현지시각 5월 19일 오후 8시 CBS EVENING NEWS를 통해 서울 체류 중이던 도쿄특파원 브루스 더닝(Bruce Dunning)의 전화 리포트와 함께 방송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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