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좌절된 혁명가 치고 억울하고 분통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지만, 동학혁명기의 김개남(金開南, 1853~1894) 장군과 같은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동학혁명은 전봉준·김개남·손화중의 3대 지도자에 의해 전개되었다. 여기에 김덕명과 최경선을 더하여 5대 지도자로 일컫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동학혁명 관련 역사책과 연구서는 전봉준에만 집중한다. 드라마나 연극 등 예술 작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동학혁명 = 전봉준'이라는 등식이 생겨나고 일반화되었다. 물론 동학혁명의 총지휘자는 전봉준이고, 그의 개혁사상과 비범한 능력, 출중한 인품은 동학혁명을 이끈 지도자로서 모자라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서 그만한 민중의 영웅도 찾기 어렵다. 전북태인 출신인 김개남은 동학혁명의 준비와 진행과정에서 특출한 역할을 하였다. 본명이 김영주(金永疇)인 그는 동학에 입문하여 활동하면서 신분 노출을 피하고자 기범(箕範)이란 가명을 사용하고, 어느 날 꿈에 신인(神人)이 개남(開南)이란 두 글자를 손바닥에 써서 보여 주었기 때문에 이름을 '개남'으로 고쳤다고 한다. "남조선을 개벽한다"는 뜻이 담긴다. 동학의 2세 교주 최시형이 1890년 전라도 일대를 순행하며 포덕할 때 그를 만나 동학에 입도하고 접주로서 사회개혁사상에 접하게 되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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