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지난 8일 고 우석균 선생의 추모식. 자신이 의사라서 자기 건강을 잘 안다며 염려말라다가 위암 4기를 선고받았고, 치과 갈 시간을 못 내서 십수 년째 어금니 없이 살았다는 미련한 의사를 보고 옵니다. 논문 대신 성명서를 쓰고, 학회 대신 토론회서 발표하고, 병 중에도 집회를 나갔던 이의 열정, 헌신, 희생에 대한 추모사들도 절절하게 들었습니다. 64세, 왕성히 활동하다 쓰러진 이의 삶이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와 답사를 한 큰 딸은 상당한 반전을 주었습니다. 그는 고인이 진지하고 치열했을뿐더러 재미있었고 허술했다는 이야기들을 실감나게 전하면서 추모객들을 웃게 했고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가장 그답게 가셨다'는 말로 우리가 고인을 더 따뜻하게 기억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도 해줬습니다. 오후에 입관식에서는 '저승에서 일곱 개의 심판을 받을 때 도움이 되라고 다라니경을 넣어주었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관에다 '심판에게 잘하라'고 쓰고, 동생은 '대들지 마라'고 썼다고 합니다. 거침없고 엉뚱한 딸들을 보며, 좋은 아빠였겠구나 안심이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우석균 선생의 이름을, 그가 집중했던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이름을 처음 본 것은 환경운동 초기인 1980년대 말, 연탄공장 인근에 살다 피해를 입은 고 박길래님의 병을 진폐증으로 진단하고 이를 배상케한 운동에 대한 기록에서였습니다. 당시 삼표연탄 측은 "우리 공장에서 20년 넘게 일한 노동자들도 안 걸린 병을 왜 이웃의 주부가 걸리냐"라며 박길래님의 진단을 강하게 부정하고 모욕적인 언사로 일관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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