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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독립운동가가 된 신문배달원

100년 만에 독립운동가가 된 신문배달원

올해 6월 10일은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인 6·10만세운동의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가보훈부는 이 만세 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13명에게 특별 포상을 하기로 했다고 8일 자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이번 특별 포상은 3월 1일 및 8월 15일과 더불어 순국선열의 날(을사늑약 강제일)인 11월 17일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하던 기존 관행을 벗어난다. 3·1운동 및 광주학생독립운동(1929)과 함께 한국인들의 자주독립 열망을 가장 열렬히 분출한 1926년의 이 사건을 특별히 부각시키는 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건국훈장 애국장(2명), 건국포장(2명), 대통령표창(9명)을 받는 특별포상 대상자 13명 중의 한 명인 김낙환(金洛煥)은 일제강점기의 경상북도경찰부가 작성한 <고등경찰요사(要史)>에 따르면 신문 배달을 하는 청년이었다. 1903년 생이고 본적이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원당리인 그의 직업은 시대일보사 경성판매소 배달원이었다. 이 신문사는 3·1운동 독립선언서 작성자인 최남선이 친일 전향 4년 전인 1924년에 창간한 언론사다. 오늘날의 서울 종각역 및 조계사 인근인 견지동에 거주하면서 이 신문사의 배달 일을 하던 김낙환은 <고등경찰요사>에 따르면 시대배달동무회 집행위원도 겸했다. 총 들고 감시하는 일제 병력 앞에서 격문 배포 당시에는 배달원 단체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6·10만세운동 2개월 전에 발행된 1926년 4월 11일 자 <조선일보>는 김낙환의 주거지(견지동 99번지) 인근인 견지동 97번지에 위치한 시대일보사 경성판매소의 배달원들이 시대배달동무회 준비회를 개최한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해 2월 13일 자 <동아일보>는 전조선신문배달조합총동맹 창립회가 개최된 사실을 자세히 전했다. 이처럼 신문배달원 단체가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시대배달동무회 집행위원이라는 직함도 영향력이 있었다. 김낙환은 이 영향력을 순종황제 장례에 맞춰 계획된 6·10만세운동을 위해 활용했다. 그는 사회주의 학생조직인 조선학생과학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이 운동에 참여했다. 조선총독부는 7년 전 3·1운동의 '악몽'을 막고자 순종의 상여가 지나갈 서울 시내 곳곳에 경찰과 군대 병력을 대대적으로 배치했다. 보훈부의 <독립운동사 제9권: 학생독립운동사>는 "5천 명의 일제 군대와 2천 명이 넘는 정·사복 경찰의 경계 속에서" 장례 행렬이 행진했다고 알려준다. 그처럼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6월 10일 오전 8시 40분부터 청년·학생들의 가두투쟁이 벌어졌다. 그 대열에 김낙환이 있었다. 역사적인 이 현장에서 그는 시대일보사가 아닌 한민족에 고용된 배달원이었다. 이때 그는 항일 격문 배포를 담당했다. 그가 있었던 위치는 4년 뒤 동대문부인병원으로 개칭될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 앞이었다. 위 <독립운동사>는 이렇게 기술한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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