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아빠가 쓰러지신 것은 2009년 1월이고 돌아가신 지는 13년이 흘렀습니다. 세 딸만 기억하는 엄마가 돌아가신 지는 8년이 흘렀습니다(관련기사: 한없이 낮아지신 분, 우리 곁을 떠나다 http://bit.ly/HaOH1o). 아빠는 군대를 제대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목회를 하겠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으셨고 1970년대~1980년대에 하월곡동 달동네 교회의 목사로 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빈민운동을 하셨습니다. 빨갱이 목사라는 주민들의 수근거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며 털털 웃으시며 주민을 만나시고 반독재운동에 나서셨습니다. 2012년 3월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국주민운동교육원 선배로서 교육실천을, 대안교육공동체 온배움터에서 생태교육운동을 지속해 오셨습니다. 아빠에게 교육실천은 주민 서로를 조직가로 세우는 민중교육운동이었습니다. 아빠는 가난이 준 고통속에서도 가난을 (겪는 이들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셨지만,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투병하고 돌아가실 때 그 고통을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런 저의 아빠, 고 허병섭이 2026년 민주주의 발전 유공 국민훈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브라질의 민중교육사상가이자 실천가인 파울로 프레이리를 과거의 사람으로 폄훼하는 사람도 보았지만, 2026년인 지금 교육과 민주주의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구조와 권력이 빠진 채 인권과 민주주의는 제대로 옷을 입지 못하고 공허한 음절로만 남아 있습니다. 사고도 사유도 사라지고 말씨름만 남아 더 가진 자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탈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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