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세계적 명성과 업적의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2020년, 자신이 치료 불가능한 암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열망에 그는 항암 치료를 이어가며 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3년 6개월에 걸쳐 기록된 일기는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내적 고뇌와 함께 인생의 황혼에서 생애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모색으로 가득하다. 2023년 3월 사망 후 고인의 유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입수한 방대한 자료와 접촉의 결과로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시간이 조명되기 시작한다. 생의 종막을 맞이할 때 인간은 어떤 생각에 잠길까 여러 차례 투병 생활을 견뎌낸 사카모토 류이치는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던 그는 2019년 봄, 뉴욕 자택 정원에 피아노를 가져다 놓는다. 눈과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인위적으로 제작된 악기가 자연에 풍화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로 한 것. 빗방울이 떨어지자 음악가는 정원으로 나와 피아노와 더불어 흠뻑 젖어가며 건반을 두드린다. '물아일체' 경지란 이런 걸까? 시간이 좀 지났다. 2020년, 그는 자신이 심각한 암 말기 상황임을 파악한다. 담담히 가족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뉴욕을 떠나 일본의 임시 거처로 옮겨 투병 생활을 준비한다. 암 발병 부위를 대수술로 도려내지만, 전이는 예상치를 이미 초과한 상태다. 수술 대신에 투약 치료를 선택한 음악가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자신에게 질문하며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못다한 것들과 눈에 밟히던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한다. 노년에도 변함없는 창작욕에 불타던 그에게 투병으로 인한 체력 저하는 조바심이 난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질곡일 수밖에 없다. 힘이 부족해 이제 더는 장시간 공연을 소화할 수 없는 몸이다. 하지만 음악 혼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온라인 콘서트를 준비한다. 수척해진 얼굴, 앙상한 팔이 유독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러나 차분한 표정에 정돈된 의상을 갖춰 입은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긴 손가락으로 자신의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천천히 연주하자 공기가 일순 바뀐다. 작업할 때 자주 듣는 곡이지만, 화면에 흐르기 시작한 선율이 유독 귀에 감긴다. 느닷없이 눈시울이 불거진다. 이미 작고한 지 3년이 지났다. SNS에 나름의 추모글도 올렸던 바, 굳이 감정 과잉이 될 이유가 없다. 영화 역시 신파를 자극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연출하지 않는다. 단순히 거장의 불운한 마지막이 슬프다거나 그런 감정이 아니라, 사카모토 류이치의 업적과 생애를 구구절절 과시하듯 열거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곡을 떠올리는 순간 보물상자가 툭 열리듯 자동재생된 탓이다.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는 그렇게 문을 연다. 평범한 인물 전기 다큐멘터리와 보법이 다르다 화면에서 목격하듯 사카모토 류이치는 생에 대한 애착과 함께 유한한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정갈하게 준비하려 생의 마지막을 알뜰하게 활용했다. 그는 매번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음악 활동과 공연을 남겼고, 이를 정리한 일련의 기록영화가 속속 등장했다. 2017년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2018년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 2023년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가 차례로 공개되며 국내 극장가에도 소개된 바 있다. 음악 다큐멘터리와 영상 에세이를 겸비한 해당 작업을 통해 고인을 애도하고 공백을 달래온 셈이다. 마치 연작 같은 흐름 속에서 2025년 등장한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는 2024년 방영한 NHK 스페셜 'Ryuichi Sakamoto: Last Days' 극장판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선택과 집중'이 명백하다. 대충 사회 저명인사 부고 성격으로 미리 준비하는 연대기적 요약과 차원이 다른 건 확실하다. NHK에서 다양한 주제 다큐멘터리 작업을 담당하던 오모리 켄쇼 감독은 황혼에 접어든 거장이 느끼는 음악은 어떤 형태와 색깔을 가질까에 주목한다. 화면을 거대한 캔버스 삼아, 사카모토 류이치가 말년에 도달한, 혹은 아쉽게 완결짓지 못한 음악적 실체를 추적하는 모험에 나선 것. 가장 명시적인 자료는 집요할 만큼 꾸준히 기록한 일기다. 가녀리지만 의지를 담아 꾹꾹 눌러쓴 일기부터 휴대전화 메모장까지 방대한 텍스트가 고인의 생각을 드러낸다. 여기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경주한 말년 음악 활동 실황이 더한다. 그리고 활동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그가 구현하려던 지향에 궤를 같이하는 다양한 이미지/사운드 실험이 결합한다. 때로는 음악의 선율보다는 자연의 소리라 표현해야 마땅할 음향이 여백과 간격을 유지하며 스며들고, 종종 의도된 무음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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