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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가 발표한 경이로운 시... 한국에서 읽지 못했던 이유 | Collector 에 나오는 나타샤라는 이름은 이 시에 이국적 느낌을 부여한다. 평안북도 방언인 마가리(오두막집) 및 '고조곤히'와 더불어 '소주'가 그런 이국적 느낌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국 문학의 지평 넓힌 백석의 시 세계 평북 정주군에서 태어났고 본명이 백기행(白夔行)인 시인 백석은 세계 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지금처럼 외국작품 번역이 활발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그런 경지를 이루려면,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릉원주대학교 2012년도 박사논문인 김완성의 '김소월과 백석 시의 민족의식 연구'는 백석이 1930년부터 유학한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언급하면서 "그는 청산학원 시절에 전공인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어·러시아어·독일어·프랑스어까지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특출한 외국어 실력을 통해 축적한 세계문학 지식을 작품 속에 담으면서도 독자들이 낯선 느낌을 갖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이국적인 것과 토속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융합시켰다. 이는 그가 자기 뿌리를 잊지 않는 문인이기 때문에도 가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열일곱 나이로 오산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30년이다. 이때 조선일보사 '신년현상문예'에 당선됐다. 이는 그가 신문사 후원으로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때 당선된 작품은 '그 모(母)와 아들'이라는 단편소설이다. 그가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1935년 8월 30일 자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다. 고향에 관한 시를 첫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자기 것을 기반으로 세계를 품는 그의 시 세계는 이때부터 펼쳐졌다. 전체 내용보기"> 에 나오는 나타샤라는 이름은 이 시에 이국적 느낌을 부여한다. 평안북도 방언인 마가리(오두막집) 및 '고조곤히'와 더불어 '소주'가 그런 이국적 느낌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국 문학의 지평 넓힌 백석의 시 세계 평북 정주군에서 태어났고 본명이 백기행(白夔行)인 시인 백석은 세계 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지금처럼 외국작품 번역이 활발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그런 경지를 이루려면,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릉원주대학교 2012년도 박사논문인 김완성의 '김소월과 백석 시의 민족의식 연구'는 백석이 1930년부터 유학한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언급하면서 "그는 청산학원 시절에 전공인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어·러시아어·독일어·프랑스어까지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특출한 외국어 실력을 통해 축적한 세계문학 지식을 작품 속에 담으면서도 독자들이 낯선 느낌을 갖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이국적인 것과 토속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융합시켰다. 이는 그가 자기 뿌리를 잊지 않는 문인이기 때문에도 가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열일곱 나이로 오산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30년이다. 이때 조선일보사 '신년현상문예'에 당선됐다. 이는 그가 신문사 후원으로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때 당선된 작품은 '그 모(母)와 아들'이라는 단편소설이다. 그가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1935년 8월 30일 자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다. 고향에 관한 시를 첫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자기 것을 기반으로 세계를 품는 그의 시 세계는 이때부터 펼쳐졌다. 전체 내용보기"> 에 나오는 나타샤라는 이름은 이 시에 이국적 느낌을 부여한다. 평안북도 방언인 마가리(오두막집) 및 '고조곤히'와 더불어 '소주'가 그런 이국적 느낌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국 문학의 지평 넓힌 백석의 시 세계 평북 정주군에서 태어났고 본명이 백기행(白夔行)인 시인 백석은 세계 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지금처럼 외국작품 번역이 활발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그런 경지를 이루려면,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릉원주대학교 2012년도 박사논문인 김완성의 '김소월과 백석 시의 민족의식 연구'는 백석이 1930년부터 유학한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언급하면서 "그는 청산학원 시절에 전공인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어·러시아어·독일어·프랑스어까지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특출한 외국어 실력을 통해 축적한 세계문학 지식을 작품 속에 담으면서도 독자들이 낯선 느낌을 갖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이국적인 것과 토속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융합시켰다. 이는 그가 자기 뿌리를 잊지 않는 문인이기 때문에도 가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열일곱 나이로 오산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30년이다. 이때 조선일보사 '신년현상문예'에 당선됐다. 이는 그가 신문사 후원으로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때 당선된 작품은 '그 모(母)와 아들'이라는 단편소설이다. 그가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1935년 8월 30일 자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다. 고향에 관한 시를 첫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자기 것을 기반으로 세계를 품는 그의 시 세계는 이때부터 펼쳐졌다. 전체 내용보기">
영어교사가 발표한 경이로운 시... 한국에서 읽지 못했던 이유
오마이뉴스

영어교사가 발표한 경이로운 시... 한국에서 읽지 못했던 이유

26세의 영어교사 백석은 1938년 3월호 <여성>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발표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나린다"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그는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밤 힌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산골로가 마가리에살자"라고 읊었다. 그런 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벌서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라고 노래했다.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나타샤라는 이름은 이 시에 이국적 느낌을 부여한다. 평안북도 방언인 마가리(오두막집) 및 '고조곤히'와 더불어 '소주'가 그런 이국적 느낌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한국 문학의 지평 넓힌 백석의 시 세계 평북 정주군에서 태어났고 본명이 백기행(白夔行)인 시인 백석은 세계 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지금처럼 외국작품 번역이 활발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그런 경지를 이루려면,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강릉원주대학교 2012년도 박사논문인 김완성의 '김소월과 백석 시의 민족의식 연구'는 백석이 1930년부터 유학한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언급하면서 "그는 청산학원 시절에 전공인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어·러시아어·독일어·프랑스어까지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특출한 외국어 실력을 통해 축적한 세계문학 지식을 작품 속에 담으면서도 독자들이 낯선 느낌을 갖게 만들지 않았다. 그는 이국적인 것과 토속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융합시켰다. 이는 그가 자기 뿌리를 잊지 않는 문인이기 때문에도 가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열일곱 나이로 오산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30년이다. 이때 조선일보사 '신년현상문예'에 당선됐다. 이는 그가 신문사 후원으로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그때 당선된 작품은 '그 모(母)와 아들'이라는 단편소설이다. 그가 시인으로 등단한 것은 1935년 8월 30일 자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다. 고향에 관한 시를 첫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자기 것을 기반으로 세계를 품는 그의 시 세계는 이때부터 펼쳐졌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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