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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28] 프랑스혁명 방불케 한 동학농민혁명 | Collector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28] 프랑스혁명 방불케 한 동학농민혁명
오마이뉴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28] 프랑스혁명 방불케 한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혁명 이전까지 우리는 혁명이 없는 역사를 살았다. 피지배층의 저항은 반란·폭동·난동 등으로 매도되고 혹독한 탄압이 따랐다. 반정(反正)이 몇 차례 시도되었으나 내부의 권력교체수준이어서 엄격한 의미의 혁명은 아니었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은 혁명이라기보다 창업에 속한다. 봉건왕조시대에 혁명은 커녕 변변한 개혁도 허용되지 않았다. 기득권층에게 개혁은 반역과 동의어처럼 인식되고 단죄되었다. 혁명이 있어야 하고 성공했어야 할 시기에 이루지 못함으로써 조선 왕조는 멸망하고 왜적의 식민지배에 이어 분단의 비극을 겪게 되었다. 결국 좌절되고 말았지만 전근대에서 근대의 철문을 연 동학농민혁명은 1789년 프랑스혁명과 유사점이 많은, 우리나라 근현대 최초의 혁명이었다. 유럽의 중심지 프랑스와 아시아의 변방 한반도라는 지리적 차이와, 1세기의 시차가 있었지만 상황과 추구하는 목표·가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혁명 전 프랑스는 절대주의 부르봉 왕조에서 제1신분인 승려와 제2신분인 귀족계급 10%가 전 농토의 60%를 차지하고 제3신분인 인구의 90%가 나머지를 분작하였다. 프랑스혁명의 지적기원을 들자면 몽테스키외·볼테르·루소 같은 계몽사상가들의 역할이 있었다. 동학혁명에는 선각자 최제우·최시형·손병희가 있었다. 이들의 생명존중사상, 보국안민사상, 개벽사상·평등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계몽주의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에 루이 16세와 같은 무능한 군주와 왕비 마리앙투와네트의 사치낭비가 극심했고, 조선에는 고종과 민비의 행태가 이와 유사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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