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1985년 4월 29일, 삼미 슈퍼스타즈가 18번째로 졌다. 그날 패배는 새로울 것도 없었다. 이미 열일곱 번을 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날의 패배로 하나의 기록이 만들어졌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18연패. 패배는 늘 있었지만, 그렇게 길게 이어지는 패배는 처음이었다. 프로야구가 시작되고 4번째 시즌이었다. 사실 삼미가 더 약했던 것은 첫 시즌을 치르던 1982년이었다. 제대로 선수단을 구성할 겨를도 없이 시작했던 그때의 삼미는 승률 1할대의 팀이었다. 평균적으로 5번 싸우면 1번도 채 못 이기는 팀이었다는 이야기다. 연패가 일상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개막전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둔 뒤 8연패를 당했고, 그 뒤로도 40경기를 치른 전기리그에만 6연패, 5연패, 9연패를 경험했다. 그리고 후기리그 역시 11연패로 시작해 다시 7연패와 8연패를 당하고서야 시즌이 마무리됐다.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프로야구에서 대략 10번쯤 지면 한 번은 이기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투수가 없어서 야수가 던지고, 타자 중에 3할을 넘기는 선수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그 팀이 당했던 최다연패가 11이었고, 그 이상의 숫자가 다시 찍히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듬해인 1983년, 일본 프로야구의 슈퍼스타 장명부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컵을 들고 개선한 국가대표 임호균, 김진우, 정구선, 이선웅이 가세한 삼미는 과연 달랐다. 초반부터 파죽지세로 전 시즌에 당했던 모든 치욕들을 설욕하더니, 비록 한 끗 차이로 좌절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정상권을 넘보는 강팀으로 올라섰던 것이다. 그제야 생각하면 82년의 슈퍼스타즈는 하나의 해프닝, 그러니까 정색하고 그 이후의 누군가와 비교하려고 하면 곤란한, 극히 예외적인 무언가였다. 물론 그로부터 다시 한 해를 건너오면서 우여곡절은 있었고,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1985년의 삼미 슈퍼스타즈가 1982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보다 약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30승을 할 수 있는 투수 장명부가 있었고, '헐크' 이만수보다도 훨씬 거대한 포수 김진우가 있었고, 또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2루수 정구선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그 삼미가 혹시 꼴찌를 할 수는 있고 연패를 당할 수는 있겠지만, 11번도 넘게 연속으로 진다는 것은 미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8연패... 팬들은 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지난 3년간 꼴찌, 2위, 꼴찌를 경험한 뒤 맞이하는 네 번째 시즌은 아마도,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상위권에 올라갈 차례라는 막연한 낙관 속에 맞이한 1985년 3월 30일 롯데와의 개막전은 역시나 기분 좋은 승리였다. 이튿날 2차전을 내주며 사이좋게 1승 1패를 기록한 것까지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건너 만난 OB전부터는 사이좋은 주고받기도 없었고, 개평도 없었고, 자비도 없었다. 패, 패, 패. 그 뒤로 늘어선 MBC, 삼성, 다시 OB, 그리고 해태, 롯데. 5개 팀들이 차례로 맡겨둔 것처럼 승을 찾아갔고 어느새 삼미의 연패는 상상의 마지노선 11을 훌쩍 넘어 18에 이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연패가 길어지면 선수들은 온갖 궁리를 다 해본다. 머리를 밀기도 하고, 바지를 양말 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또 훈련 틈틈이 야구장 잔디 사이에서 자란 토끼풀 중에 이파리 네 개인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는 이들도 있다.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