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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피해자로 38년 "내가 겪은 비극의 서사가..." | Collector
고문 피해자로 38년
오마이뉴스

고문 피해자로 38년 "내가 겪은 비극의 서사가..."

80년대는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다. 길거리에서 전투경찰이 거리낌 없이 대학생들의 가방을 뒤졌고, 사복경찰이 학교에 상주하며 운동권 학생들의 동향을 살폈다.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 포식자들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듯 달려들었고, 현장에서 잡히면 부모를 협박해 휴학을 종용하거나 군에 끌고 갔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던 시절이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강제 징집되거나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가 2921명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2022.11월). 징집된 학생 중 일부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고, 수많은 학생들이 국가정보기관의 밀실에 끌려가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일주일간 이어진 고문 <트라우마 해방일지>(2026년 1월 출간)를 쓴 저자 김용신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83년 연세대에 입학, 학생운동에 앞장 섰다. 1986년 말 군에 입대해 1987년 2월, 현역 군인으로 복무할 때 보안사령부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고문 기술자들은 그를 발가벗긴 다음 몽둥이로 때렸고, 사지를 결박한 상태에서 수건을 뒤집어씌운 후 얼굴에 물을 부었고, 엄지발가락 둘과 엄지손가락 둘에 구리 전선을 연결해 전기를 흘려보냈다. 고문은 1주일간 이어졌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윗선을 불어라.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살아 나갈 생각은 말아라. 여기는 간첩들이나 들어오는 곳이다(24쪽). 그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정보기관이 작성한 서류에 확인 도장을 찍고서야 지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자대로 복귀한 이후, 그는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군은 보복성 조치로 보직을 변경, 그를 전투 부대에 배치했다. 고문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헛것이 보이고 들리는 환시와 환청, 정신착란 증상이 나타났다. 한번은 내무반에 있는데, 천둥소리가 치면서 번개가 내리쳤다. 나는 내무반을 나와 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면서 절을 했다. 천둥소리가 마치 나를 위로하고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걸로 착각한 것이다(51쪽). 군 막사를 내려가는 계단 앞에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노래를 불러줬다.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노래였다. 어떤 음악회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 밀려왔다(63쪽). 고문 피해자로, 보호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영에서 지낸 2년 세월은 그의 정신세계를 무너뜨렸다. 고문이 남긴 트라우마는 군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혔다. 군은 고문 사실을 은폐했고 그를 적대시했다. 선임병들이 수시로 구타나 폭력을 일삼았지만, 간부들은 이를 방임했다. 전역하던 날, 인사계 상사는 '네가 살아서 나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치료의 적기(golden time)를 놓친 대가는 참혹했다. 전역 후에도 그는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공포와 불안, 초조와 두려움이 밀려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지옥 같은 삶을 끝내자. 그는 '안녕히 계세요'라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약이란 약은 모조리 입에 털어 넣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다행히 가족들이 발견해 목숨을 건졌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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