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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을 조사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 Collector
이근안을 조사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오마이뉴스

이근안을 조사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지난 3월 25일, 88세를 일기로 그가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언론은 앞다투어 그의 악행을 재조명하고, 고문 피해자들의 아픔을 다시금 호출했지만 정작 내 가슴에 차오른 건 분노보다는 형언할 수 없는 '불편함'이었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오히려 역사적 단죄의 대상이었던 한 노인의 죽음이 왜 며칠 밤낮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누워도 보고 거울 속의 나를 응시해 보면서도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고 며칠간의 고통스러운 고민 끝에 알게 되었다. 그 불편함은 고문 기술자라는 이근안이라는 이름 석 자가 상징하는 거대한 악(惡)의 상징성 때문만이 아니었다. 과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시절, 그를 세 차례나 직접 대면하며 조사했던 그 시간이 내 영혼에 남긴 '내상'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근안을 직접 조사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와 마주 앉아 진실을 향해 살벌한 설전을 벌이고, 그의 왜곡된 확신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 시간은 나에게도 지독한 폭력이었다. 조사실의 공기: 법 위에 군림한 '사상투쟁'의 궤변 나는 여전히 조사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던 이근안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 며칠 동안 조사를 준비하고 모의 연습을 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사죄하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국가를 위해 얼마나 숭고한 희생을 했는지 증명하러 온 전도사 같았다(실제 당시 그는 '전도사' 신분이었다). 그가 내뱉은 첫 마디부터가 가관이었다. 자신이 고문했던 조작 간첩 피해자들이 '진짜 빨갱이'라는 확신. 그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다. 그에게 고문은 불편하거나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수사 기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사를 건 '사상투쟁'이었다. "고도로 훈련된 간첩들은 웬만한 수사로는 자백하지 않는다. 그러니 특수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들의 입을 열어야 했다. 그것은 국가를 지키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가 말한 '특수한 방법'은 곧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의미했다. 더욱 경악스러웠던 건 그가 고문을 '예술 행위'에 비유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끝에서 누군가의 영혼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는 장인이 작품을 빚듯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행위로 묘사했다. 법보다 사상이 위였고, 빨갱이를 다루는 데는 법보다 주먹이 앞서도 된다는 그 위험천만한 신념 앞에 나는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그에게 고문은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애국심의 증거였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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