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포항엔 바다가 있고, 갈매기가 있고, 제철소가 있다. 철을 만드느라 시도 때도 없이 하늘로 퍼지는 공단 연기를 처음엔 싫어 했다. 자고로 바다라면 수평선이 보여야 하는데, 왜 공장 투성이냐며 바다를 보며 철없이 구시렁댔다. 모르는 소리라고, 포항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저기 있다는, 포항이 고향인 남편 말에도 아랑곳없이. 이제 그 제철소에서 내 막냇동생이 비지땀을 흘리며 일한다. 어쩌다 포항에 연루돼 잊을 만하면 포항에 내려갔고, 형산강이 흐르는 제철소 주변을 뜨내기처럼 돌아다녔다. 여의도 국회 정문보다 큰 포스코 정문, 철을 싣고 다니는 철도를 지나다 보면 SF영화의 한 장면을 스치는 기분이었다. 저 건물에서 쇳물을 녹여 철근을 만드는구나, 동생이 저기 있구나, 싶을 땐 머리가 얼얼해졌다. 용광로를 자세히 떠올리기엔 내 상상력이 한참 빈곤했다. '쇳가루 냄새' 나는 동네의 뼈대 굵은 역사 어느 날, 당직을 마친 동생과 돈가스를 사먹고 제철소가 보이는 형산강 근처서 딸기라떼를 마셨다. 20대 중반의 동생은 이미 나보다 더 어른이었다. 부모님을 유난히 잘 챙기고, 계엄이 벌어진 그해엔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와 누나 걱정을 하던 녀석이다. 그래선지 포항 공단 마을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만화 <제철동 사람들>(2022년 8월 출간)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제철동 사람들>을 그린 이종철 만화가는 그야말로 포항 토박이. 서울에서 6년간 택배 상하차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까대기>(2019)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노동 만화가 드문 요즘, 저자가 직접 겪고 그려낸 일터 이야기에 끌려 첫 책이 나오자마자 읽었고, 회사일로 만나 인터뷰도 한 바 있다. 그로부터 2년 뒤 나온 <제철동 사람들>(2021)도 작가 특유의 고증과 섬세함이 빛난다. 이 만화책은 볼 때마다 마음에 와닿는 인물이 달라진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여럿 본 관객들처럼. 대개 <빌리 엘리어트> 관람 1회차 땐 춤추는 빌리의 서사에 집중하고, 2회차 땐 무용학교에 입학한 빌리의 학비를 벌기 위해 탄광으로 향하는 아버지에 울컥해 코끝이 찡했다는 관객이 많다. <제철소 사람들> 역시 읽을 때마다 코끝 찡해지게 하는 인물이 달라지는 마법을 선사한다. 처음 읽을 땐 제철소 지근거리서 자라난 주인공 '강이'의 학창시절이 흥미롭다. 강이는 만화가의 분신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읽을 땐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먹고 잠드는 동네 지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학교와 식당, 시장을 활보하는 동네 주민들 개성이 한 명 한 명 맛깔나는데, 그다음 읽고 나서 비로소 보였다. 강이의 엄마 '순이'와 이모라는 존재들이. 어쩌면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은 포항의 용광로를 돌아가게 하는 '철의 여인'들이겠다. 제철소 가까이 식당 터를 잡고, 공장에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김치찌개와 두루치기를 먹이며 당신 자신도 살아냈으니까. 방황하던 남편들 사이에서 이 여자들은 괄괄하고, 성실하고, 능히 낙천적이었다. 포항 공단 출퇴근길을 책임진 '철의 여인들' 책 초반에 등장하는 순이(가명)는 식구 많은 집에서 태어나 1970년대 말, 고교 학업을 위해 부산으로 건너간다. 대학 진학의 꿈을 접고 은행에 취직한 뒤 지금의 아버지인 창규 씨를 만났고, 어려운 시기를 타개할 방책으로 포항 남구 제철동으로 삶터를 옮긴다. 그렇게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순이"는 만화가를 기른 엄마이자, 한 식당의 사장이 되어 쇳가루 지천인 동네 터줏대감으로 선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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