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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지 않던 마음, 지리산 둘레길에서 찾은 해법 | Collector
회복되지 않던 마음,  지리산 둘레길에서 찾은 해법
오마이뉴스

회복되지 않던 마음, 지리산 둘레길에서 찾은 해법

지난해 심장수술을 마친 후로부터 무기력한 날이 지속돼 왔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매일 빠지지 않고 약만 먹으면 좋아질 것이라는 주치의의 진단에도, 정신적인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똑 같이 반복되는 생활은 슬럼프로 가는 요인이었다. 이래서 안 되겠다는 생각에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래서 시작한 게 걷기운동이었다. 그렇게 4개월 동안 하루 10km 이상을 거르지 않고 걷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페이스북 글 하나가 관심을 끌었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사단법인 숲길이 주관하는 '토요걷기' 행사로, 1회 신청 인원은 20명 한정으로 선착순으로 접수, 매주 토요일 집결지에 모여 하루 1구간 둘레길을 걷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3개도(경남, 전남, 전북), 5개 시군(하동, 산청, 함양, 남원, 구례), 20개읍면, 120여 개 마을을 잇는, 21개 구간 289.4km(숲길 공식자료)의 거리다. 지난 3월 14일, 처음으로 지리산둘레길 5코스 동강~수철 구간 걷기에 참여했다. 동강마을(함양군 휴천면)에 모여 수철마을(산청군 금서면)로 이동, 수철마을에서 역순으로 동강마을로 걸었다. 이 구간은 12.1km로 주요 경유지는 수철마을, 고동재, 산불감시초소, 쌍재, 상사폭포,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 자혜교 그리고 동강마을로 이어진다. 간단한 인사와 준비운동을 마치고 걸음은 시작됐다. 출발지인 마을부터 오르막 구간이다. 십여 분 걸으니 숨이 차올라 겨울용 등산재킷을 벗어야만 했다. 1시간 좀 넘게 걸어 고동재(해발 559m)에 도착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고동재는 주변 산줄기가 고동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과 계곡 풍경이 아름다운 트레킹 명소로 알려져 있다. 숲속 길은 낙엽이 쌓여 푹신해서 걷기에 편하다. 짧은 내리막길과 긴 오르막길이 연속적으로 반복된다. 숨이 가쁘고 힘들다 보니 내리막길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 시작인데 생각하면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다. 인생사도 평탄한 길만 걸을 수는 없는 것이고 보면,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만 같다. 3개도 5개 시군 120여 개 마을 잇는 순례길 두 시간을 걸어 최고 고도인 산불감시초소(해발 680m)에 도착했다. 지리산둘레길은 구간마다 고도가 250~800m를 오가는 길로 이루어져 있다. 초소 사방으로 뻥 뚫린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으로는 함양군 일대가, 반대쪽은 산청군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을 많이 다녔어도 천왕봉이 이렇게 가까이 느껴지는 장소도 이곳 외에는 별로 없지 않을까 싶다. 간단한 도시락으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리막길은 역시 편하다. 구간 중간마다 벅수(마을 어귀나 길가에 나무나 돌로 세운 사람 모양의 형상)가 길을 안내한다. 벅수에는 고유번호와 함께 지나온 거리와 남은 거리가 표기돼 있어, 길 안내와 함께 체력 안배에 참고가 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화살표 중 빨간색은 정방향이고, 검은색은 역방향으로, 오늘 일정은 역방향 순으로 걷고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산 정상을 목표로 걷는 길이 아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며, 마을의 역사를 알고 문화를 체험하는 길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아주 오래된 숲길이 선조들의 흔적이 담긴 길이라면, 최근에 닦인 길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낸 길로서, 그 길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삶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냇물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다. 작은 계곡에서 얼었던 물이 녹아 새 생명에 기운을 넣어주기 위해 내는 소리로 들린다. 엎드려 입을 갖다 대고 한 모금 들이켜니 온몸이 짜릿하다. 어릴 적, 소를 몰고 다닐 때, 배가 고파 계곡물을 한없이 마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거의 60년 전의 일로 인생무상이 느껴지는 지금이지만, 물맛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가 않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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