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주는 아름다운 풍광 이면에 층층이 쌓인 아픔을 간직한 땅이다. 이번 제주 여정의 발길은 화려한 해안도로를 잠시 벗어나, 제주의 속살에 새겨진 굴곡진 역사를 되짚어 보는 길로 향했다. 그 시작은 제주 시내의 관덕정이었다. 고풍스러운 정자 앞 광장은 평화로워 보였으나, 이곳은 제주도 전역에 큰 상처를 남긴 4.3의 도화선이 된 역사의 현장이다. 1947년 3.1절 기념 행사에서의 발포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제주 전역에 불어 닥친 광풍을 생각하니, 정자의 처마 끝조차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이 깊은 상흔의 줄기를 따라 발길을 옮겨 아내와 나는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4.3 기념관으로 향했다. 기념관 건물 앞에 당도하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디며 송이째 툭 떨어져 내린 붉은 꽃잎들을 보니, 그것이 단순한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억울하게 쓰러져간 4.3의 넋들이 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너븐숭이'는 '넓은 땅' 혹은 '너른 터'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라 한다. 척박한 돌밭 사이에서 마을 사람들이 정겹게 부르던 이 평화로운 이름의 너른 터가, 훗날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슬픔의 땅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숫자가 아닌 삶의 비극 엄숙하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기념관 안으로 들어섰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서는 제주 4.3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문장 속에 담긴 눈물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영상실이었다. 1949년 1월 17일, 평화롭던 북촌리에 어둠의 그림자가 덮쳤다. 마을 인근 고개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인들이 마을에 들이닥친 것이다. 군 당국은 마을을 포위하고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날 단 하루 만에, 아무 죄 없는 400여 명의 주민이 너븐숭이 밭과 인근 벌판에서 무참히 학살 당했다. 이 참혹한 진실 앞에 나는 숙연함을 넘어 깊은 슬픔을 느꼈다. 마주한 전시실 벽면에는 수백 명의 희생자 명단이 끝없이 적혀 있었다. 나이가 채 몇 살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 이름이 수두룩한 것을 보며 대체 이 참혹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정말 말문이 막혔다. 여린 생명들은 무슨 죄가 있어 모진 불길에 쓰러져야 했을까. 이성을 가진 문명 사회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반인륜적인 비극이었다. 숨진 어머니의 가슴에 매달려 젖을 물고 있는 아기를 묘사한 그림 앞에 서자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함께 그림을 바라보던 아내는 젖어든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너무 슬퍼요. 인간 세상에 어떻게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니..." 나는 차마 고개를 마주하지 못한 채, 탄식을 삼키며 낮게 대답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외면하고 싶어도 이 그림이 바로 그날의 참혹했던 현장이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라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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