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지난달 29일에는 역대 독재정권하에서 고문과 간첩 조작 등으로 훈장·포장이나 표창을 받은 경찰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어 지난 1일에는 국가정보원에서 동일한 전수조사가 시작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시절의 국정원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라는 말을 들었다. 날아가는 새를 합법적으로 떨어트리지 않고 고문이나 조작 등으로 떨어트린 정보부 요원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번 조사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이제는 그들이 떨어트림을 당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의 '간첩 생산' 과거의 간첩 수사는 '간첩 적발'이기보다는 사실상 '간첩 생산'이었다. 이북에서 남파된 간첩보다 서울 남산에서 남파된 간첩이 훨씬 많았다. '훨씬 많았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적어도 전두환 집권 이후에는 진짜 간첩사건보다 조작 간첩사건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 국정원의 자체 판단이다. 국정원이 2007년에 펴낸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학원·간첩 편(VI)>에 이런 문구가 있다. "80년대 이후의 간첩사건에서 확실한 증거가 나온 사례는 별다른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은 사례에 비해 훨씬 적다." 국정원과 보안사 등에서 자주 구사되던 논리가 있다. '간첩 사건에는 증거가 없다'는 논리다. "간첩이란 고도의 훈련을 받아서 매우 은밀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증거를 남기지도 않고 찾기도 어렵다"는 변명이 공안기관에서 자주 언급됐다고 위 보고서는 말한다. '간첩들이 어떤 놈들인데 증거를 남기겠느냐'는 식의 논리가 회자됐던 것이다. 위 보고서는 보안사령관 출신인 전두환도 그런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알려준다. 1980년대부터 간첩사건 수사가 한층 부실해진 이유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정보기관 수사관들이 사흘 정도 피의자의 기력을 빼놓은 뒤에 시키는 것이 있었다. 출생 직후부터 현재까지의 전 과정을 16절지 갱지에 쓰는 자서전(자술서) 작성이다. 1985년에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붙들린 황대권의 경우에는, 두 달간 자서전 집필에 쓴 누런 갱지가 거의 책상 높이였다고 한다. 볼펜은 열두 자루 사용됐다. 자서전을 쓰는 동안에 피의자들은 툭하면 얻어맞았다. 위 보고서에 예시된 바에 따르면, '몇월 며칠에 서울 종로 술집에서 친구를 만났다'고 적으면, 수사관들이 똑바로 쓰라며 구타했다. 수사관들은 '몇월 며칠에 동지를 포섭하고 정세를 파악할 목적으로 서울 종로 술집에서 친구를 만나 학생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정부 비방 발언을 했다'는 식으로 고쳐 쓰라고 '첨삭 지도'를 해줬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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