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국내 유일의 남한 호랑이 박제가 목포 초등학교에 있는 사연 | Collector
국내 유일의 남한 호랑이 박제가 목포 초등학교에 있는 사연
오마이뉴스

국내 유일의 남한 호랑이 박제가 목포 초등학교에 있는 사연

한반도는 한때 '호랑이의 나라' 라고 할 정도로 야생 호랑이가 전 산천을 누비며 호령했다. <조선왕조실록>에 호랑이의 출몰과 피해, 그리고 이를 잡기 위한 사냥의 기록 등 호랑이 관련 내용이 1000여 건이나 기록될 정도였다. 그런데 '호랑이의 나라'라 불리던 이 땅에 이젠 더 이상 호랑이가 없다. 기록 속에서만 포효하는 존재, 산천의 기억 속에만 남은 생명체로 남아있을 뿐이다. 왜 우리의 호랑이가 사라졌는가. 조선시대에도 왕명으로 조직된 포수들이 '착호군'이라고 해서 산을 누볐고, 때로는 마을 전체가 호랑이와의 전쟁을 치렀지만 이는 필요에 따라 개체 수를 조절하는 수준이었고 기본 바탕은 공생을 지향한 것이었다. 이 땅에서 호랑이가 사라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해수구제(害獸驅除)'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한 대대적인 포획과 학살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벌린 한국 호랑이 사냥인 '정호기'의 사례를 보듯이 이는 일제의 노골적인 식민 야욕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21년 경상북도 경주 대덕산 호랑이 포획 기록을 마지막으로 남한 지역에서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호랑이 관련 표본과 박제도 일본, 미국 등지로 반출되어 당시 한국 호랑이의 생생한 실체를 가늠해 볼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국내 유일한 한국 호랑이 박제가 전남 목포에 있다고 해서 거룩한 장도의 길을 나선다. 지난 3월 8일, 아직 겨울의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던 날, 먼저 전남 영광 불갑산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햇살은 부드러워졌고, 들녘에는 이른 봄의 기척이 번지고 있었다. 터널을 몇 개나 지났을까. 어둠과 빛이 반복되는 사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연해주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 산맥과 산맥을 따라 3000여 리 떨어진 이 남쪽 끝까지 내려오는데 몇 세대가 걸렸을까. 아득하고 아련했다. 국가 자연유산 명승 불갑산 도립공원에 들어서자 불갑산 호랑이와 상사화로 장식된 철제 부식 표지판이 먼저 맞아 주었다. 붉디붉은 상사화는 가을에 와야 볼 수 있어 다음을 기약한다지만 꽃과 잎이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는 그 식물처럼, 실제 이곳 호랑이 서식지와 호랑이 박제는 언제 만날 수 있으려나 묘한 대비를 이룬다. 불갑산 호랑이굴 가는 탐방 코스는 불갑사 경내를 거쳐 완만하게 오르는 길과 주차장에서 관음봉-덕고개-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코스가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다. 불갑산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선택이 오만임을 자각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은 생각보다 깊고 험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능선,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길. 숨은 가빠졌고,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관음봉 너럭바위에 이르렀을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바위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불갑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느린 걸음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와 바위 위에 올라 사찰을 굽어보며,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던 호랑이가 오버랩 되는 게 아닌가.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