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김홍도는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국가에 필요한 그림을 제작하는 도화서 화원이었고,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진화사로 임명되었으니 그의 실력은 당대에 이미 충분히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김홍도가 신윤복과 함께 조선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화가로 자리 잡은 데는 풍속화의 역할이 컸다. 신윤복이 주로 양반들의 뒷이야기를 풍속화에 담았다면, 김홍도는 백성의 일상에 더 관심을 두는 편이었다. 특히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논갈이>도 그중의 하나다. 앞에서는 두 마리의 소에 쟁기를 걸고 땅을 갈아엎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뒤로는 농부들이 쇠스랑을 이용하여 논을 고르고 있다. 이용하되 폭력적이지 않은 관계 김홍도가 평소에 관찰한 각기 다른 장면을 하나로 모아 그린 듯하다. 소를 이용한 쟁기질이 상당히 경사진 진 땅을 오르는 구도인 데 반해, 뒤의 그림은 평지에서의 작업이니 말이다. 보통 경사가 심하거나 척박한 땅은 두 마리의 소가 쟁기를 끌었음을 고려할 때 언덕배기의 거친 땅을 오르는 중이지 싶다. 체중이 쏠리는 뒷발로 버티고 앞발을 내디디고 있다. 김홍도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도 엿보인다. 먼저 쟁기를 끄는 농부의 오른쪽을 유심히 보면 가느다란 선이 하나 보인다. 몸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오른손으로 소를 제어할 때 쓰는 회초리를 들고 있다. 그러고 보니 왼쪽 어깨가 얼굴을 전부 가릴 정도로 올라가 있다. 옷도 따라 올라가 허리춤의 살이 그대로 보인다. 쟁기를 깊게 박아야 하는데 한 손으로 눌러야 하니, 쟁기 손잡이를 가슴이나 어깨에 대고 힘을 주어서 나타난 자세다. 다리로 버티며 힘을 주기에 농부의 종아리에도 근육이 불끈 솟아올랐다. 김홍도가 평소에 농부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에 기초하여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소의 묘사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땅에 깊게 박힌 쟁기를 온몸으로 당기며 앞발로 나아가는 중이어서 어깨 쪽 근육이 잔뜩 부풀어 있는 상태를 강조했다. 또한 어깨와 목 사이에 걸려 있는 멍에로 인해 생긴 주름도 놓치지 않았다. 나아가 소 특유의 지저분한 엉덩이에도 신경을 썼다. 소는 하루에 워낙 많은 양의 분뇨를 배출하는데, 튄 분뇨가 꼬리를 자주 흔들기에 엉덩이 전체에 퍼져 지저분해진다. 김홍도는 농부들보다도 오히려 소를 더 꼼꼼하게 관찰하고 공을 들여 그림에 묘사해 놓았다. 조선과 같은 농경 사회에서 소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논을 갈고 농토를 일구는 데 소는 필수적이었다. 물론 빈농의 경우에는 소가 없어서 사람이 쟁기를 끌었지만, 전체적으로 농본 사회를 유지하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소를 사들이거나 외양간을 지을 때는 길일을 받아 시행했다. 축사 관리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보름마다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날씨가 추워지면 외양간의 보온뿐만 아니라 지푸라기 덮개를 만들어 소를 덮어주었다. 농사철이면 낮에는 풀을 뜯기고 밤중에 죽을 많이 먹여서 힘을 보충하게 했다. 농한기에는 소의 살을 찌우고 힘을 기르게 배려했다. 종종 양지바른 곳에서 털을 골라주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켰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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