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밥 얻어먹지 못한 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는 기자의 고백 | Collector (빨간소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소설이라 한다면, 이 책은 '액자인생'이라 할 만하다. 책에는 유희의 삶뿐 아니라 유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담겨 있다. 밥으로 조직된 연대, 투쟁의 현장을 지탱하다 유희가 처음으로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지은 것은 연합 연대사업국장 시절이다. 함께 굶는 날이 다반사였던 시절 유희는 김치찌개로 시작해 노점상 회원들이 가져다주는 채소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연합 사무실에 상근하며 몇 달만 용돈을 번 뒤 그만두리라 마음먹었던 서선정(송파주거복지센터장, 위례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유희의 밥을 먹고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점상 동지들을 위해 밥을 짓던 유희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하게 된 계기는 1995년 3월 최정환 열사의 죽음이었다. "복수해 달라"는 처절한 유언을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의 영안실에는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유희는 노점상, 장애인, 학생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 솥을 걸고 밤새 국을 끓였다. 그해 11월 28일 유희가 밥짓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스물여덟살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의 주검이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구타의 흔적이 선명했고 몸은 밧줄에 묶여 있었다. 강제 부검 이후 경찰은 사인을 '익사'라고 밝혔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전체 내용보기"> (빨간소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소설이라 한다면, 이 책은 '액자인생'이라 할 만하다. 책에는 유희의 삶뿐 아니라 유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담겨 있다. 밥으로 조직된 연대, 투쟁의 현장을 지탱하다 유희가 처음으로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지은 것은 연합 연대사업국장 시절이다. 함께 굶는 날이 다반사였던 시절 유희는 김치찌개로 시작해 노점상 회원들이 가져다주는 채소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연합 사무실에 상근하며 몇 달만 용돈을 번 뒤 그만두리라 마음먹었던 서선정(송파주거복지센터장, 위례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유희의 밥을 먹고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점상 동지들을 위해 밥을 짓던 유희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하게 된 계기는 1995년 3월 최정환 열사의 죽음이었다. "복수해 달라"는 처절한 유언을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의 영안실에는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유희는 노점상, 장애인, 학생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 솥을 걸고 밤새 국을 끓였다. 그해 11월 28일 유희가 밥짓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스물여덟살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의 주검이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구타의 흔적이 선명했고 몸은 밧줄에 묶여 있었다. 강제 부검 이후 경찰은 사인을 '익사'라고 밝혔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전체 내용보기"> (빨간소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소설이라 한다면, 이 책은 '액자인생'이라 할 만하다. 책에는 유희의 삶뿐 아니라 유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담겨 있다. 밥으로 조직된 연대, 투쟁의 현장을 지탱하다 유희가 처음으로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지은 것은 연합 연대사업국장 시절이다. 함께 굶는 날이 다반사였던 시절 유희는 김치찌개로 시작해 노점상 회원들이 가져다주는 채소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연합 사무실에 상근하며 몇 달만 용돈을 번 뒤 그만두리라 마음먹었던 서선정(송파주거복지센터장, 위례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유희의 밥을 먹고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점상 동지들을 위해 밥을 짓던 유희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하게 된 계기는 1995년 3월 최정환 열사의 죽음이었다. "복수해 달라"는 처절한 유언을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의 영안실에는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유희는 노점상, 장애인, 학생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 솥을 걸고 밤새 국을 끓였다. 그해 11월 28일 유희가 밥짓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스물여덟살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의 주검이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구타의 흔적이 선명했고 몸은 밧줄에 묶여 있었다. 강제 부검 이후 경찰은 사인을 '익사'라고 밝혔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전체 내용보기">
오마이뉴스

"밥 얻어먹지 못한 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는 기자의 고백

저자 최규화는 2024년 6월 페이스북에 올라온 수많은 부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65세로 세상을 떠난 유희씨가 주인공이었다. 유명인이 아닌 데도 그녀를 기억하고 애도의 글을 올린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의 밥을 먹어본 사람들이었다.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 본 사람치고 유희 동지의 밥을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주 지도위원이 쓴 '추모의 글'의 한 대목이다. 저자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유희씨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얻어먹어서 미안한 게 아니라, 얻어먹은 적이 없어서 미안했다. 그녀가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본 사람'들의 곁에서 밥을 짓고 나눈 30년 세월. 그 세월 동안 나는 그녀의 현장에 가 본 적 없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는 유희를 기억하는 15명을 인터뷰했다. 그밖에도 유희가 쓴 글, 유희에 대해 쓴 많은 글을 읽었고 유희가 노점상을 하고 전국노점상연합(아래 연합) 연대사업국장과 부의장을 했던 시절, 그리고 유희가 밥을 지어준 사람들과 노조, 단체에 관한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유희 언니>(빨간소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액자소설이라 한다면, 이 책은 '액자인생'이라 할 만하다. 책에는 유희의 삶뿐 아니라 유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담겨 있다. 밥으로 조직된 연대, 투쟁의 현장을 지탱하다 유희가 처음으로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지은 것은 연합 연대사업국장 시절이다. 함께 굶는 날이 다반사였던 시절 유희는 김치찌개로 시작해 노점상 회원들이 가져다주는 채소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연합 사무실에 상근하며 몇 달만 용돈을 번 뒤 그만두리라 마음먹었던 서선정(송파주거복지센터장, 위례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유희의 밥을 먹고 "이 길이 내 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노점상 동지들을 위해 밥을 짓던 유희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하게 된 계기는 1995년 3월 최정환 열사의 죽음이었다. "복수해 달라"는 처절한 유언을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의 영안실에는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유희는 노점상, 장애인, 학생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 솥을 걸고 밤새 국을 끓였다. 그해 11월 28일 유희가 밥짓기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스물여덟살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의 주검이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구타의 흔적이 선명했고 몸은 밧줄에 묶여 있었다. 강제 부검 이후 경찰은 사인을 '익사'라고 밝혔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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