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열여섯에 끌려간 '빼벌'<br>...'양OO'라 불린 그녀를 아십니까 | Collector
열여섯에 끌려간 '빼벌'<br>...'양OO'라 불린 그녀를 아십니까
오마이뉴스

열여섯에 끌려간 '빼벌'
...'양OO'라 불린 그녀를 아십니까

이순자는 '이순자'이고 싶었다. "양갈보", "양공주", "양색시"는 이순자(가명·67)가 '그곳'에서 불리던 멸칭이었다. 폭력과 범죄가 횡행한 그곳에서 그는 성매매를 강요당했고 수용소에 강제로 구금당했다. 그는 멸칭으로 불리다 '무연고 사망자'로 지워진 언니들처럼 죽고 싶지 않았다. 그는 67년 인생 처음으로 국회를 찾았다. 그는 국회에선 잘 이야기되지 않는 "미군 위안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 이순자는 2시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주 한숨을 쉬었다. 그곳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계속되는 고통을 증언하며 그는 자신을 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이순자'로 불리지 못했던 기억들을 따라가며 이순자가 50년 전 어린 시절의 이순자와 마주했다. "단발머리 열여섯 살 때 그렇게 된 거거든." 그가 기억을 비집고 '기지촌'으로 들어갔다. 벗어날 수 없고, 떨쳐낼 수 없는 그곳은 "컴컴한 방"이었다. "부서진 장롱, 얼룩진 침대, 그 쓸모없는 물건들을 내가 다 산 거래요. 그러면 그게 빚이 되는 거야. 빚을 갚아야 거기서 나갈 수 있는데 못 갚으니까 포주는 계속 나를 데리고 있는 거야. 맨날 울면서 집에 간다고 하면, 맨날 매를 맞고 욕을 듣는 거야." 10대의 어린 나이에 미군 위안부들은 잠잘 데나 일자리를 알아봐 준다는 말에 속아 기지촌으로 납치·인신매매되곤 했다. 열여섯 살의 이순자도 1975년 인신매매를 당해 빼벌(경기 의정부 고산동 옛 미군 기지촌)에 들어갔다. "어딘지도 모르고" 도착한 포주집에서 주인(포주)과 클럽 매니저는 이순자에게 약을 먹게 했다. "러미라"와 "세코날" 같은 마약류였다. 그는 약에 취한 몸으로 미군들을 상대했다. "분홍색 알약 30알"을 강요받고 자해도 해 봤지만 그곳을 벗어날 순 없었다. 빼벌에서 탈출한 지 한 달 만에 그는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동두천으로 끌려갔다. "동두천에선 내 이름이 없이 살았어요. 타인의 이름으로 산 거야. 미성년자다 보니까 남의 이름으로 만든 검진패스(보건증)를 내고 미군 부대 안에 들어가 몸을 팔았어요. 깡통같이 생긴 배럭스(막사), 거기가 우리가 몸을 팔던 곳이야." 이순자는 캠프 케이시(경기 동두천 보산동 미군 기지) 인근 보산리 기지촌에서 1~2년을 보냈다. 부대 안 "게이트웨이클럽"을 지나면 보이는 빈 막사에서 그는 미군들을 상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떠올린 기억들 사이사이엔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았다. "컨택"(성병에 걸린 미군이 성매매한 여성 지목)과 "토벌"(미군·경찰·보건소의 합동 단속)도 "멋대로" 벌어졌다.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