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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학운동사 우리동리 야학선생 공장아저씨 몸이 아파 공장에는 못오시지만 매밤마다 야학에는 와주신다오 아프신 몸 더해지면 엇지할가요 몃츨동안 쉬시래도 말슴안들어 우리들도 할수업시 매밤 온다우 우리보며 벙글벙글 늘웃던 얼굴 지금에는 산한 얼굴 쓸쓸한 얼굴 매밤마다 바라보면 눈물진다우 - [중앙일보] 1932년 1월 4일 '야학선생님'. 김형목, <대한제국기 야학운동>에서 재인용 이 시는 1930년대 불린 동요인데, 2026년 현재 야학 교사로 있는 제가 지금 읽어도 공감이 됩니다. 몸이 아픈데도 야학에 오는 교사는 배우려는 학생들의 눈빛을 보면 힘이 나거든요. 야학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며 에너지를 채웁니다. 한국 야학 운동은 일제 강점기 애국 계몽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식인과 종교계가 주도하여 '글을 알아야 나라를 찾는다'는 신념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는 전쟁 직후 혼란 속에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을 위해 기초 교육을 실시하여 공교육의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1970년대~1980년대에는 '공돌이', '공순이'라고 불리던 도시로 올라온 어린 노동자들이 대학생과 지식인이 만든 야학에서 단순 교육을 넘어 노동법, 사회학을 학습하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민주화가 진전되고 공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일반 시민과 소외 계층에게 학력 인정 검정 공시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야학은 학령기를 놓친 어르신들과 학교 밖 청소년들이 배움을 다시 시작하는 학교로 그 역할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원시민학교의 역사 수원시민학교는 2013년 11월 1일에 개교한 시민을 위한 학교입니다. 수원시민학교는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배움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 및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배움을 나누는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한글 문해교육부터 초중고 졸업 학력 취득을 위한 검정고시 과정을 교육합니다. 수원시민학교는 박무영 선생님이 기탁하신 명예퇴직금을 바탕으로 설립되어, '배움에 대한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학교 운영비는 11명의 이사진과 전현직 교사,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충당합니다.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시민 의식의 첫걸음'이라는 교육 철학 아래, 무료로 배운 학생이 다시 돌아와 시민교사로 봉사하는 '배움과 나눔과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구현하는 학교입니다. 개교 후 10년 간 검정고시 합격자 227명을 배출하였고, 졸업생은 학교로 다시 돌아와 시민교사로 활동하거나 사회 각지에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3년이 넘게 지켜온 우리학교는 2026년 4월 4일 시행된 검정고시 시험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올해 1월 열린 이사회에서 수원시민학교의 현재를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마지막'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였습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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