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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이전 활동한 한국 비밀경찰의 암호 '105호' | Collector 는 "105호. 4·26 이전의 한국 비밀경찰의 암호"라고 보도했다. 이승만 하야 성명 이전까지 105호라는 비밀경찰이 활동했던 것이다. 오늘날 집권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당 조직을 가동하지만, 이승만 때는 경찰 조직을 더 많이 활용했다. 이처럼 경찰이 선거운동원을 겸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3·15부정선거 1년 전인 1959년 3월 20일에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임명되고 7일 뒤 이강학 치안국장이 임명된 것은 사실상 선거대책본부의 재편이었다. 최인규-이강학 조합이 운영한 것이 105호 비밀경찰이다. 1919년생인 최인규는 뉴욕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대한교역공사 이사장, 국제연합한국재건단(운크라) 주미한국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런 뒤 1958년에 자유당 공천으로 경기도 광주군에서 민의원(국회의원)이 됐다. 1924년생인 이강학은 상급자인 최인규와 대학 전공이 비슷했다. 이강학은 니혼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그런데 미국 유학파인 상급자와 달리 그는 미·일 유학파였다.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에 이어 캘리포니아대 경찰행정과를 졸업했다. 그런 뒤 치안국 경무과장과 서울시경국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를 공부한 해외 유학파들이 다른 분야도 아니고 비밀경찰을 맡게 됐던 것이다. 105호와 108호 최인규와 이강학이 주도한 105호는 전국 경찰들을 감독하고 시찰할 목적으로 지방 지부를 갖췄다. 장덕환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한국의 4월혁명>은 선거개입 독찰을 위한 조직 구조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 독찰반은 24명 간부 경찰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서울시와 각도에는 또 다른 지방 독찰반이 있었다. 치안국 6개 과장(경무·보안·수사·특정·경비·통신)과 20여 명의 각급 계장(총경) 그리고 30여 명의 반장(경감급)으로 구성된 선거 독찰반은 서울시와 각 도마다 각각 담당 구역이 있어서 이강학의 명령만 떨어지면 즉각 자기 구역으로 전달하고, 또한 최인규가 내린 비밀지령이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여부를 독찰하는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는 "105호. 4·26 이전의 한국 비밀경찰의 암호"라고 보도했다. 이승만 하야 성명 이전까지 105호라는 비밀경찰이 활동했던 것이다. 오늘날 집권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당 조직을 가동하지만, 이승만 때는 경찰 조직을 더 많이 활용했다. 이처럼 경찰이 선거운동원을 겸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3·15부정선거 1년 전인 1959년 3월 20일에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임명되고 7일 뒤 이강학 치안국장이 임명된 것은 사실상 선거대책본부의 재편이었다. 최인규-이강학 조합이 운영한 것이 105호 비밀경찰이다. 1919년생인 최인규는 뉴욕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대한교역공사 이사장, 국제연합한국재건단(운크라) 주미한국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런 뒤 1958년에 자유당 공천으로 경기도 광주군에서 민의원(국회의원)이 됐다. 1924년생인 이강학은 상급자인 최인규와 대학 전공이 비슷했다. 이강학은 니혼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그런데 미국 유학파인 상급자와 달리 그는 미·일 유학파였다.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에 이어 캘리포니아대 경찰행정과를 졸업했다. 그런 뒤 치안국 경무과장과 서울시경국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를 공부한 해외 유학파들이 다른 분야도 아니고 비밀경찰을 맡게 됐던 것이다. 105호와 108호 최인규와 이강학이 주도한 105호는 전국 경찰들을 감독하고 시찰할 목적으로 지방 지부를 갖췄다. 장덕환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한국의 4월혁명>은 선거개입 독찰을 위한 조직 구조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 독찰반은 24명 간부 경찰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서울시와 각도에는 또 다른 지방 독찰반이 있었다. 치안국 6개 과장(경무·보안·수사·특정·경비·통신)과 20여 명의 각급 계장(총경) 그리고 30여 명의 반장(경감급)으로 구성된 선거 독찰반은 서울시와 각 도마다 각각 담당 구역이 있어서 이강학의 명령만 떨어지면 즉각 자기 구역으로 전달하고, 또한 최인규가 내린 비밀지령이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여부를 독찰하는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는 "105호. 4·26 이전의 한국 비밀경찰의 암호"라고 보도했다. 이승만 하야 성명 이전까지 105호라는 비밀경찰이 활동했던 것이다. 오늘날 집권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당 조직을 가동하지만, 이승만 때는 경찰 조직을 더 많이 활용했다. 이처럼 경찰이 선거운동원을 겸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3·15부정선거 1년 전인 1959년 3월 20일에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임명되고 7일 뒤 이강학 치안국장이 임명된 것은 사실상 선거대책본부의 재편이었다. 최인규-이강학 조합이 운영한 것이 105호 비밀경찰이다. 1919년생인 최인규는 뉴욕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대한교역공사 이사장, 국제연합한국재건단(운크라) 주미한국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런 뒤 1958년에 자유당 공천으로 경기도 광주군에서 민의원(국회의원)이 됐다. 1924년생인 이강학은 상급자인 최인규와 대학 전공이 비슷했다. 이강학은 니혼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그런데 미국 유학파인 상급자와 달리 그는 미·일 유학파였다.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에 이어 캘리포니아대 경찰행정과를 졸업했다. 그런 뒤 치안국 경무과장과 서울시경국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를 공부한 해외 유학파들이 다른 분야도 아니고 비밀경찰을 맡게 됐던 것이다. 105호와 108호 최인규와 이강학이 주도한 105호는 전국 경찰들을 감독하고 시찰할 목적으로 지방 지부를 갖췄다. 장덕환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한국의 4월혁명>은 선거개입 독찰을 위한 조직 구조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 독찰반은 24명 간부 경찰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서울시와 각도에는 또 다른 지방 독찰반이 있었다. 치안국 6개 과장(경무·보안·수사·특정·경비·통신)과 20여 명의 각급 계장(총경) 그리고 30여 명의 반장(경감급)으로 구성된 선거 독찰반은 서울시와 각 도마다 각각 담당 구역이 있어서 이강학의 명령만 떨어지면 즉각 자기 구역으로 전달하고, 또한 최인규가 내린 비밀지령이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여부를 독찰하는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4·26 이전 활동한 한국 비밀경찰의 암호 '105호'
오마이뉴스

4·26 이전 활동한 한국 비밀경찰의 암호 '105호'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나 동독의 슈타지 같은 비밀경찰이 한국 현대사에도 있었다. 이 비밀경찰은 1960년 4월에 폭로됐다. 그달 29일 자 <경향신문>은 서울시경찰국 간부의 제보를 근거로 "3·15 정·부통령 선거 당시 이(이강학) 전 치안국장이 비밀경찰까지 만들어 일반 경찰관에게 심한 위협을 준 사실이 알려졌다"라며 3월 28일 경질된 이강학 전 내무부 치안국장(경찰청장)의 선거 개입 실태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선거에 대한 부정 비밀지시를 각 경찰서에 보내고 그 지시가 야당계 인사, 일반인에게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방법과 양심적인 경찰, 친야당계 경찰관으로 보이는 각급 경찰관의 동향을 감시시키기 위하여" 이강학이 비밀경찰들을 시경과 일선 경찰서에 배치했다고 전했다. 3·15 부정선거의 핵심 인력은 경찰들이었다. 이 경찰들이 상부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지 않는지를 감시하고자 만든 것이 비밀경찰이다. 이들을 지칭하는 암호가 있었다. 그해 5월 5일 자 <동아일보>는 "105호. 4·26 이전의 한국 비밀경찰의 암호"라고 보도했다. 이승만 하야 성명 이전까지 105호라는 비밀경찰이 활동했던 것이다. 오늘날 집권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당 조직을 가동하지만, 이승만 때는 경찰 조직을 더 많이 활용했다. 이처럼 경찰이 선거운동원을 겸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3·15부정선거 1년 전인 1959년 3월 20일에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임명되고 7일 뒤 이강학 치안국장이 임명된 것은 사실상 선거대책본부의 재편이었다. 최인규-이강학 조합이 운영한 것이 105호 비밀경찰이다. 1919년생인 최인규는 뉴욕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대한교역공사 이사장, 국제연합한국재건단(운크라) 주미한국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런 뒤 1958년에 자유당 공천으로 경기도 광주군에서 민의원(국회의원)이 됐다. 1924년생인 이강학은 상급자인 최인규와 대학 전공이 비슷했다. 이강학은 니혼대학 경제학과 출신이다. 그런데 미국 유학파인 상급자와 달리 그는 미·일 유학파였다.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에 이어 캘리포니아대 경찰행정과를 졸업했다. 그런 뒤 치안국 경무과장과 서울시경국장 등을 역임했다. 경제를 공부한 해외 유학파들이 다른 분야도 아니고 비밀경찰을 맡게 됐던 것이다. 105호와 108호 최인규와 이강학이 주도한 105호는 전국 경찰들을 감독하고 시찰할 목적으로 지방 지부를 갖췄다. 장덕환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한국의 4월혁명>은 선거개입 독찰을 위한 조직 구조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 독찰반은 24명 간부 경찰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서울시와 각도에는 또 다른 지방 독찰반이 있었다. 치안국 6개 과장(경무·보안·수사·특정·경비·통신)과 20여 명의 각급 계장(총경) 그리고 30여 명의 반장(경감급)으로 구성된 선거 독찰반은 서울시와 각 도마다 각각 담당 구역이 있어서 이강학의 명령만 떨어지면 즉각 자기 구역으로 전달하고, 또한 최인규가 내린 비밀지령이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여부를 독찰하는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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