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가족은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인간 공동체다. 정체성의 기초를 형성한다. 하지만 가족의 가치를 앞세우는 가족주의(familism)는 가족과 동일시될 수 없는, 근대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근대 이전 사회에서 가족은 생존과 재생산의 단위였다. 개인의 정체성은 가족보다는 신분, 종교, 지역 공동체에 더 깊이 연결되었다. 가족주의는 가족의 전통적 기능이 약화한 근대 사회에서 등장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확인하는 사실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가족을 자본주의 생산 단위에서 밀어냈다. 근대 개인주의와 국가 제도의 확장은 혈연 공동체의 역할을 축소했다. 그런 축소의 과정에서 가족은 역설적으로 개인의 삶을 지탱해주는 마지막 안전망, 정서적 안식처로 이상화된다. 많은 문학 작품, 영화, 드라마가 보여주는 가족주의 신화의 탄생이다. 근대적 가족주의는 국가와 시장이 감당하지 못한 불안과 위험을 가족에게로 떠넘긴다.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돌봄, 빈곤, 불평등을 가족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럴 때 가족은 보호의 공간이자 압박의 감옥이 된다. 애증의 대상이 된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개인의 선택은 제한되고, 가족 내부의 불평등과 폭력은 쉽게 은폐된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을 수 없는 갈등과 충돌을 억누르려고 한다. 2025년 개봉한 두 편의 SF 영화 <아바타3: 불과 재>와 <프레데터: 죽음의 땅>에서 뜻밖에 발견하는 흥미로운 주제는 이런 오래된 가족과 가족주의이다. 두 영화 모두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서 현란한 영상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관객이 인간으로서 이 영화에서 감흥을 얻는 건 이미지의 화려함이나 눈요기만이 아니다. 가족의 의미를 묻는 <아바타3> <아바타 3>의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2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늘 사람(지구인)과 판도라 원주민의 대립 구도에 새롭게 등장한 재의 부족 망콴, 그 지도자 바랑(우나 채프린)이 개입하면서 갈등 양상을 복잡하게 만든다. 판도라 행성 부족이 모두 판도라의 위대한 어머니 에이와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역시 짐작 가능한 이야기다. 망콴 부족이 개입해서 좀 더 플롯이 복잡해지긴 했으나, 결국은 단순한 대립으로 이어지고 해결된다. 여러 평자가 지적했듯이, 아바타 시리즈를 끌고 가는 핵심 서사는 낯익다. 미국 서부 개척기 혹은 서부 약탈 시기 백인 원주민 대립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판도라 원주민의 모습과 생활 방식이 그렇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원주민의 관점으로 사태를 보려는 수정주의 서부극 영화의 SF 판본이다. 그리고 1편부터 3편에 이어지는 판도라를 점령하려는 인류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우리는 지금 진행중인 불법적인 이란 침공에서 확인하는 중이다. 제국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3편에서 눈에 들어오는 건 2편에서 씨가 뿌려진 가족 분열의 전개,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 가족의 관계 묘사에 공을 들인 부분이다. <아바타3>는 2편에 나온 첫째 아들 네테이얌의 죽음 이후 슬픔에 빠진 설리 가족이 겪는 내적 위기에 초점을 맞춘다. 네테이얌의 죽음은 남은 가족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아들의 죽음에 인간의 책임이 있다고 믿는 네이티리는 자신의 분노를 입양한 인간 아이인 스파이더에게 돌린다. 피가 섞인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전된 인종주의가 작동한다. 제이크는 네이티리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가족으로 받아들인 스파이더를 지키려고 한다. 스파이더 캐릭터는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지만, 가족의 의미를 묻는 역할을 한다. 스파이더는 본인의 특별한 출생 때문에 정체성의 불안을 느낀다. 산소마스크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던 탓에 스파이더는 자신이 설리 가족에게 부담을 준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그는 가족을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역할은 역시 특별한 출생의 비밀을 가진 키리(시고니 위버)도 비슷하다. 아바타 몸에서 태어나서 설리 부부가 가족으로 받아들인 키리는 에이와와 특별한 교감의 관계를 맺으며 판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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