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채용 서류를 오래 보다 보면 묘한 순간이 있다. 문장은 반듯하고 구성도 매끄럽다. 성장 과정은 성실하고, 지원 동기는 분명하며, 입사 후 포부도 빠짐없다. 그런데 몇 장을 읽고 나면 공허함이 남는다. 분명 글은 읽었는데, 쓴 사람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거기서 거기라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엇비슷한 문장의 나열이다. 목재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신입 및 저연차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교육을 맡아온 지 4년째다. 입사 초기 적응부터 업무 기록, 문서 작성 훈련까지 함께 보다 보니, 채용 서류를 검토할 때 느꼈던 그 공허함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에서는 매끈하게 감춰져 있던 문제가, 실제 업무를 기록하고 설명하게 하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채용 서류의 공허함, 왜 그런지 알겠네 신입사원 교육을 맡으면서 오래 써온 방식이 있었다. 종이 양식지에 업무 내용, 업무 시간, 비고를 적는 일일 업무 일지다. 그런데 이 형식은 결국 행위의 나열로 끝났다. '사무실 집기 이동', '생산부 업무 지원', '주문장 작성 교육'.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적는 란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전에 알바할 때 비슷한 일을 했었는데', '다음엔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지', '주문장 작성이 참 어렵구나'. 이런 생각들이 기록될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종이 양식지를 버리고 직원 교육용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해당 직원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준다. 하루 동안 회사에서 겪은 일을 매일 자유롭게 기록하도록 한다. 정해진 양식은 없다. 사진, 글, 동영상 무엇이든 상관없다. 말하자면 온라인 일일 업무일지인 셈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여전히 행위를 나열하는 식으로 시작한다. 얼마간 이 기록들을 읽다 보면 서서히 드러난다. 생각이 구조화 되어 있지 않거나, 어휘가 빈약하거나, 논리적 근거 없이 느낌만 나열하는 식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문서화'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흔적이다. 산업화가 공장 몇백 채 짓는다고 완성되지 않았듯, 문서화도 서류 수백 장 써봤다고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래처 상담을 하든, 출장을 다녀오든, 사내 문제가 발생하든, 홍보 계획을 구상하든, 결국 문서화 작업이 따라야 한다. 문서화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생각을 구조화할 줄 알아야 하고, 논리적 근거를 찾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지적 역량이 필요하며, 문해력과 어휘력, 문장력이 갖춰질수록 결과물의 수준도 달라진다. 직장인의 필수 역량으로 꼽히는 워드·엑셀·PPT는 도구에 가깝다. 워드를 쓰든 볼펜으로 쓰든, 손으로 그리든 PPT로 하든, 중요한 것은 내용 그 자체다. 공장을 짓는 것과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다르다. '문서'는 사실 '콘텐츠'와 그 개념이 다르지 않다. 자기소개서도 콘텐츠다. 그런데 채용 현장에서 자기소개서는 다들 엇비슷하다. 차별성도 없고, 변별력도 떨어진다. 콘텐츠가 차별성을 잃으면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자기소개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요즘 대학가에서는 AI가 리포트, 발표문, 자기소개서 초안까지 손쉽게 만들어준다. 최근 언론에서도 생성형 AI가 바꾼 강의실, 문해력 저하, 읽기·쓰기를 AI에 맡길 때의 위험을 잇달아 다루기 시작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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