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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거리는 장흥사람들 마음의 고향이다
오마이뉴스

칠거리는 장흥사람들 마음의 고향이다

지역마다 기억 속 만남의 장소가 있다. 건물이나 건물 앞일 수 있고, 거리일 수도 있다. 소통의 공간이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헤어지고, 여럿이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했다. 스마트폰은 생각하지 못했고, 대중교통도 불편한 시절의 얘기다.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에 칠거리가 있다. 읍내 길은 모두 일곱 갈래 칠거리로 통했다. 자연스레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었다. 장날이면 인근 마을 사람은 물론 외지 상인들도 칠거리를 거쳐 시장으로 갔다. 술집과 여관, 의원과 약방도 여기에 있었다. 경찰서와 법원도 가까웠다. 칠거리에는 지역 정보가 다 모였다. 마을 소식이 스며들고 혼사, 상례 등 대소사도 논의됐다. 농사 정보와 농산물 시세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정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장흥 경제와 문화, 사회의 중심이 칠거리였다. 이뿐 아니다. 칠거리는 장흥 사람들의 공간적 기준이 됐다. '칠거리 근처', '칠거리 지나서' 같은 표현이 일상으로 쓰였다. 장흥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칠거리는 어린 시절 추억과 직결됐다. 칠거리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장흥과 칠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칠거리는 장흥 사람들 마음의 고향이다. 칠거리는 역사의 아픔도 함께했다. 1894년 석대들에서 쓰러진 수많은 동학혁명군을 기억하고 있다. 1908년 항일 의병의 장흥경찰서와 장흥헌병부대 습격도 지켜봤다. 일제강점기 장흥지청과 장흥경찰서에서 들려온 신음과 통곡 소리도 들었다. 사람들이 모여 독립 만세를 외치고, 광복의 기쁨을 함께 나눈 곳도 칠거리였다. 칠거리는 단순한 교차로나 길목이 아니다. 장흥 사람들 생활은 물론 일상의 기억이 새겨진 곳이다. 장흥 사람들 희로애락과 지역 정체성의 상징이 됐다. 칠거리가 장흥 민주화운동의 중심이 된 건 당연했다. 장흥읍의 가온누리이고, 재래시장도 여기에 있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장흥의 심장', '장흥의 명동'으로 통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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