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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인 이중섭을 생각하면 먼저 소 그림이 떠오른다. 그만큼 소 그림을 많이 남겼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흰 소>는 소에 대한 또 다른 인상을 준다. 검은색과 흰색의 강렬한 대비, 한 번도 손을 떼지 않고 순식간에 그렸을 듯한 빠르고 거친 붓질이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소가 머리를 잔뜩 낮춰 뿔을 앞세우고 돌진하려는 중이다. 어깻죽지에 긴장이 가득하고 뒷다리를 잔뜩 웅크리고 있어서 맹렬한 속도록 튀어 나가기 직전임을 알게 한다. 어둡고 거친 배경도 돌진하려는 소의 느낌을 한껏 살린다. 여러 점의 흰 소 그림 가운데 가장 역동적이다. 이중섭의 내면을 표현한 소 그림 소 그림은 이중섭의 전체 인생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소와의 관계는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 그리기에 몰두해서 학생들과 하숙생들 사이에서 소에 미쳤다는 평을 들었다. 나중에 직업 작가로 활동하던 어느 해에는 원산의 들판에서 소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오해 받아 주인에게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서 미술부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소 그림을 그렸다. 당시 일제 당국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반발해 한글 자모로 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또한 졸업 기념 사진첩에 일제에 항거하는 그림을 그려 물의가 일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 갖고 있던 민족의식과 연관해서 볼 때 소가 조선의 고유한 이미지로서 그에게 다가갔던 게 아닌가 싶다. 도쿄 유학 시절에도 우뚝 서 있는 소, 머리를 확대한 소, 아이나 연인과 함께 있는 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캔버스에 담았다. 일본에 있는 동안에도 소 묘사를 놓지 않은 것으로 봐서 일시적인 호기심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삶이나 내면과 지속적 연관이 있는 소재였기에 오래 이어졌으리라. 떠나온 고향, 혹은 조선인의 의미 등을 소의 이미지에 담았던 듯하다. 해방 이후 어렵게 귀향하여 원산에서 작업할 때도 소와의 관계가 이어진다. 하루 내내 소를 관찰하다 소도둑으로 몰린 것도 이즈음이다. 원산미술가동맹 회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원산에 온 소련의 미술가와 평론가들이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천재이기 때문에 '인민의 적'이라고 했다. 소련식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무장된 소련 미술가들에게는 이중섭의 소 그림조차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위험한 작품이었다. 이후 압력을 피해 사실주의 경향으로 그려야 했다. 경직된 사실주의 경향은 소련 내에서도 극심했다. 추상화를 비롯하여 실험적인 예술에 관대했던 레닌이 1924년에 병으로 사망하고 스탈린이 정권을 잡으면서 예술정책이 경직화의 길을 걸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소비에트 예술의 기본 방법이며,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정확하게 역사적 구체성으로 그릴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라고 규정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미술은 가차 없이 탄압했다. 칸딘스키를 비롯한 많은 미술가가 서유럽으로 망명했다. 인상주의 미술조차 대학 강의가 금지되고 미술관에서 철거되는 상황이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 새로운 형식의 미술품들이 파괴되었다. 음악이 부르주아적이라고 하여 피아니스트의 손가락까지 자른 일이 있었으니 광기를 짐작할 만하다. 이중섭의 그림은 남으로 내려와 활동할 때도 문제가 되었다. 북의 경직된 사회적·예술적 분위기에 실망하고, 또한 한국전쟁이 터진 후 불안한 생존조건 속에서 남으로 내려온 이중섭은 다시 탄압을 받았다. '신사실파전'이라는 전시회에 <굴뚝> 등 작품을 출품했다가 장욱진의 그림과 함께 수상하다는 혐의로 계엄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남이든 북이든 이념이 예술을 구속하는 사회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정신조차 스스로 검열해야 했다. 위의 <흰 소>는 남으로 내려와 활동할 때 그려졌다. 북과 남에서 그림 때문에 수상하다는 의심을 받고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던 이중섭의 실망과 분노가 소의 모습에 투영된 느낌이다. 머리를 낮춰 뿔을 앞세우고 돌진하려는 소의 모습은, 북과 남의 황당한 시각과 편견, 일본인 부인과 아이들과 떨어져 고립된 채 살던 조건에도 불구하고 무소의 뿔처럼 중단 없이 혼자 나아가고자 했던 이중섭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은 게 아닌가 싶다.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소에 담아내다 당시 소련에도 이중섭처럼 소 그림으로 곤욕을 치른 블라디미르 리센코라는 화가가 있었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는데, 대표작 <황소>는 전통적 사실주의 기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방법으로 그렸다. 우즈베키스탄의 누쿠스 미술관에 소련 시절 공개되지 않던 3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황소>가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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