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삭다'라는 말이 있다. 물건도 삭고, 음식도 삭고, 심지어 얼굴도 삭는다. 그런데 영어로는 이 말을 딱히 번역할 수가 없어서 한글 그대로 '삭다 sak-da'로 표기한 전시가 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인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다. 발효도, 부패도, 단순히 썩은 것도 아닌 삭는다는 것. 시간이 흘러 낡고 닳아서 그 형태가 변하고 소멸해 가는 것. 이 시간의 흐름과 낡음에 관한 전시라니. 궁금증이 일었다. 지난 1일 방문한 전시의 시작은 흙이었다. 아사드 라자의 작품 <흡수>. 아사드 라자는 지구 생태계에 초점을 맞춘 참여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다. <흡수>는 현지에서 구한 폐기물과 재료를 활용하여 비옥한 '네오소일(neosoil)'을 만들고 이를 나누어주는 작품이다. 경작자가 흙 위에 삭아진 도시의 부산물들을 뿌리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진다. 관람객은 그 흙을 즈려밟고 지나가야 다음 작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참신한 시도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선 이 흙을 밟고 지나야 한다니. 부드러우면서도 강제적인 이 참여 방식은 관객을 물질 순환의 관망자로 남기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초대이자 가장 영리한 방법인 듯했다. 넋 놓고 바라본 춤 이어진 작품들은 순환과 소멸에 대한 주제로 전시돼 있었다. 이은경의 <소멸의 빛>은 에그 템페라(안료를 계란, 주로 노른자와 물 등으로 만든 바인더에 섞어 그리는 전통 회화 기법 중 하나)를 사용하고 그 위에 태양광 전구가 설치되어 4주 뒤면 완전히 빛이 바래진다. 소멸되는 것이다. 그 뒤로는 여다함의 <향연>이 이어진다. 이 작품에는 향이 타며(소멸하며) 피어오르는 연기를 '춤'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사라지는 향과 연기를 한편의 무질서한 춤으로 생각했다는 작가에게서 소멸을 아름다움으로 바라보려는 미학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춤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된 건 옆에서 흘러나오는 비정형의 소리 때문이었다. 유코 모리의 <분해>.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분해>는 과일이 시간이 지나며 익어가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과일에 전극을 꽂고, 과일 내부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수분을 측정한다. 감지된 수분은 소리와 빛, 움직임을 생성하는 에너지가 되어 소리를 내고 빛을 밝힌다. 과일이 부패하면서 내부에서 생기는 변화가 음정의 높이, 빛의 세기 또는 깜박임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라니. 충격적이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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