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살다 보면 그저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성사되는 만남이 있기 마련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기분 좋은 돌발 상황을 '번개'라고 부르죠. 그런데 그 번개를 친 사람이 무려 7년 만에 연락이 닿은 인연이라면 어떨까요? 그럴 땐 열 일 다 제쳐두고 일단 "고(Go)!"를 외치며 나서는 것이 인지상정 아닐까요. 약속 장소까지 무려 4대의 버스를 타야 하는 먼 길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다행히 가는 길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창밖으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봄바람에 꽃잎이 흩날리고, 연둣빛 부드러운 녹색 기운이 햇살에 반사된 모습은 찬란함 그 자체였습니다. 7년이라는 공백을 단숨에 뛰어넘을 기대감과 함께 봄의 한가운데를 뚫고 도착한 곳은, 제가 난생처음으로 발을 들여본 지인의 다실이었습니다. 7년 만의 만남에 반가움도 잠시. 궁금했던 다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저는 그만 자리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사방을 꽉 채운 엄청난 수의 자사호(紫砂壺)와 차호들, 그리고 공간에 켜켜이 배어 있는 묵직한 차향에 완전히 압도당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섣불리 움직였다가 옷자락에 스쳐 저 귀한 기물들 중 하나라도 깨지면 어쩌나 하는 아찔함에 저절로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더군요. 맸던 배낭을 공손히 내려놓고 외투도 바깥에 벗어둔 뒤에야, 기물들의 숲 사이를 지나 조심스레 착석할 수 있었습니다. 차실에 미리 와 있던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 앉으니 문득 심사정의 <송하음다도(松下飮茶圖)>가 떠올랐습니다. 깊은 산속, 소나무 그늘에서 평온하게 차를 마시는 선비의 모습을 담은 그림 말입니다. 번잡한 일상을 떠나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며 찾아온 이 은밀하고도 고요한 다실은, 그림 속 선비가 찾아든 깊은 산속 소나무 아래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물 끓는 낮은 소리를 병풍 삼아 찻잔을 마주하고 앉은 우리는 어느새 속세를 벗어난 신선이 되어 있었습니다. 귀한 잔에 갓 피어난 봄을 담아 이어진 찻자리에서는 다양한 차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화려한 라인업의 포문을 연 것은, 사람을 놀라 죽게 할 만큼 치명적인 향기를 품었다 하여 '혁살인향(嚇煞人香)'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리는 '벽라춘(碧螺春)'이었죠.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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