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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과 싸운 거장, 자신의 삶을 '사료'로 펼치다 | Collector
임나일본부설과 싸운 거장, 자신의 삶을 '사료'로 펼치다
오마이뉴스

임나일본부설과 싸운 거장, 자신의 삶을 '사료'로 펼치다

학자가 자기 인생을 책으로 낸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평생을 사료의 바다에서 보낸 역사학자가 스스로의 삶을 가리켜 <역사인생 김현구 교수의 인생역사>(경인문화사)라고 명명할 때, 거기엔 개인의 자만을 넘어서는 무거운 책임감이 깃들어 있다. 글로벌 위기관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필자는 종종 역사를 국가가 겪어온 '거대한 재난과 극복의기록'으로 읽곤 한다. 한일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사의 왜곡은 단순한 학술적 쟁점을 넘어, 양국 국민의 인지적 재난이자 외교적 위기를 초래하는 도화선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돌파할 것인가. 분노와 감정의 동원인가, 아니면 차갑고 정교한 팩트의 축적인가라는 관점이다. 원로 학자의 회고록이 아닌 미래학을 여는 실천사, <역사인생, 인생역사>라는 제목에 눈길이 머무는 지점은 바로 그 질문이다. 왜 한 역사학자가 자신의 삶까지 역사로 남기려 했는가. 그 물음이 생각보다 크다. 용화리에서 도쿄까지, 한 세대의 사회사 김현구의 삶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이름난 학자여서만이 아니다. 그의 궤적이 한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이동 경로를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용화리의 유년, 전주의가난, 한양의 대학, 도쿄의 유학, 안암의 강단. 이 지명들만 따라가도 한 사람의 자전이 아니라 한 세대의 사회사가 읽힌다. 농촌에서 도시로, 지방에서 서울로, 생계에서 학문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이어진 그 길 위에 개인의 의지와 시대의 압력이 함께 놓여 있다. 책에 실린 어머니의 당부, "재산보다 교육을 남기라"는 말은 그냥 미담으로 흘려들을 수 없다. 그것은 한 가정의 가훈이기 이전에, 전후 한국 사회가 자식 세대에게 건넨 가장 절실한 윤리였다. 가진 것이 넉넉지 않은 집안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교육이었던 시절, 그 문장은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떠받친 생의 철학이었다. 김현구의 삶의 중심에도 바로 그 문장이 놓여 있었을 것이다. 서른여섯의 유학, 안정 대신 미완을 택하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대목은 서른여섯 살에 다시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개 그 나이면 자리를잡거나 적어도 방향을 크게 틀기에는 늦었다고 여긴다. 그는 반대로 갔다.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공부했다. 안정 대신 미완을 택한 셈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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