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민족적 열망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오직 자기 민족 스스로의 동의에 의해서만 통치받고 지배받을 것이다. 자결(Self-determination)은 단순한 구절이 아니다." 1918년 1월 8일, 제28대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은 미 의회 연설에서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3.1운동의 배경으로 배운 '민족 자결주의'가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일제의 무단통치에 신음하던 조선 민족에게 '각 민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 윌슨 대통령의 발언은 한 줄기 희망과 같았습니다. 이에 따라 1919년 2월 8일, 조선인 일본 유학생들이 모여 "만국강화회의에 민족자결주의를 우리 겨레에게도 적용하기를 청구한다"며 독립을 선언했고 같은 해 3월 1일, 한반도 전체에서 조선독립만세가 울러퍼졌습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바람과 달리 국제사회는 냉혹했습니다. 조선 독립을 위해 강화회의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까지 간 김규식 선생은 윌슨 대통령에게 건넬 독립청원서를 준비해갔으나 미국 대표단은 선생을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선생이 파리외신기자클럽 연회에서 "일본의 속박 아래 꼼짝 못 하고 떨고 있는 2천만 영혼의 간청에도 성의 있게 답하지 않는, 정의와 사상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프랑스에 경악한다"며 격분한 까닭입니다. "조선민족의 독립 선언을 들어주십시오" 독립을 향한 호소는 비단 선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19년 3월 25일, 중국 신문 <신신보(新申報)>에는 "고려 여학생의 슬픈 목소리"라는 제하로 같은 해 3월 10일 조선인 여학생이 윌슨 대통령에게 쓴 편지 전문을 실었습니다. "파리 강화회의 참석자 여러분. 우리 조선의 여아(女兒)들이 하느님 앞에 성의를 다해 여러분들에게 호소합니다"로 시작되는 해당 편지는 "우리 조선 인민 남녀노소 역시 일어나서 우리가 받고 있는 압제를 고발하고 조선의 독립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매맞고, 감금되고, 칼에 베이고 찔리고 있습니다. 머리채가 잡혀서 끌려가기도 합니다. 우리의 집들도 파괴되었습니다. 정의가 사라지고 인도주의도 사라졌습니다"라고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습니다. 이어 "여러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조선의 독립을 인정해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께서 일본의 이런 잔혹한 학정과 불공평한 대우를 막아주시겠습니까?"라면서 "이 편지가 파리강화회의에 실제로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 편지를 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보시는 분이라면 우리의 아픔을 느끼시고 파리강화회의에 전해주시겠습니까?"라며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의 독립을 논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또한 "한일합방은 우리의 바람이 아니며 일본의 계략일 뿐"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의 윌슨 대통령님께 호소합니다. 저는 당신을 아버지 같이 여깁니다. 우리의 독립 선언을 들어주시고, 세계 각국에 알려주십시오. 이것은 제가 간절히 기도하는 바입니다"라고 민족 자결주의를 선언한 윌슨 대통령에게 재차 독립을 호소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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