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동학농민군은 거사에 나서면서 '보국안민'과 '척왜'의 깃발을 들었다. '척왜'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일본의 약탈적인 양곡무역은 탐관오리의 수탈에 신음하는 농민들에게 설상가상, 이중삼중의 부담이 되고 있었다. 쌀의 일본 유출로 인한 물가의 앙등, 1889년 '조일통어장정' 이후 일본 어선의 남획으로 우리 어족자원의 고갈상태, 임오군병, 갑신정변과 관련한 정부의 거액의 배상금 지불 등은 대부분 농민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일본에 개항한 이래 일본 상인들이 조선 농촌에 침투하여 갖은 방법으로 쌀·콩 등을 매점하여 일본으로 실어갔다. 이 바람에 조선 농민들은 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 상품의 조선 진출은 급속도로 증가되어 상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1889년 (고종 26)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곡물수출금지령을 내렸다. 이른바 방곡령(防穀令)이다. 방곡령이 실시되면서 일본의 상인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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