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난 아버지는
오마이뉴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조세희 작가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일명 '난쏘공')>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이어 교사가 칠판에 쓴 것은 '뫼비우스의 띠'라는 문구였다. 안과 겉을 구분할 수 없는 휘어진 세상이다. 때로 진실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달리 그리 단순하지 않다. '1980 사북'의 모든 국면에 등장하는 경찰들 <1980 사북>이라는 한 편의 역사 드라마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제일 먼저 경찰들이 눈에 띈다. 정선경찰서 소속 이운선은 사건 초기에 지프차를 타고 돌진하여 광부 원일오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주함으로써 대규모 유혈 사태를 촉발한 인물이다. 2002년 당시 서울경찰청 외사과로 영전해 있던 이운선은, 영화 <먼지, 사북을 묻다>를 제작 중인 이미영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지프차 사건 자체를 부인했다. 애새끼들 술 처먹고 지랄하는 데를 내가 뭐 하러 가겠느나고 응? (…) 그 당시 사진들도 쭉 있지만 돌 같은 거 막 들고 이 새끼들이 찦차를 들이 빠술라고 그랬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돌에 의해서 (원일오의 배에) 떨어진 걸로 그때도 그렇게 파악이 된 걸로 알아 내가. 차에 치인 거 아니야. 결론은 차에 치인 게 아니요. (당시 이운선 2002년 인터뷰 중) 더 가깝게 말하자면, '1980 사북'에서 경찰은 광산 노조 활동에 개입하고 사찰했던 사건의 깊은 뿌리이자, 지프차 돌진 공격으로 광부들의 결정적인 분노를 폭발시킨 사건의 촉발자였다. 그러나 수천 명으로 불어난 광부들이 사북 일대를 장악하고 공권력과 맞서기 시작하면서, 경찰들은 엄청난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된다. 사북 항쟁 과정에서 경찰 측이 입은 피해는 1980년 4월 21과 22일 이틀에 집중된다. 4월 21일에는 경찰 지프차 돌진 공격 직후 분노가 폭발한 광부들이 사북지서를 파괴했고, 저녁 무렵에는 동원탄좌 객실에 모여 있던 경찰 고위급 간부들이 광부들에게 붙들려 폭행 당했다. 여기서 장성경찰서 소속 총경 홍응수 서장이 전신 타박 및 우측 늑골골절로 12주 중상을 입었고, 이채규 순경은 전신다발성 찰과상으로 6주 중상을 입었다. 4월 22일, 강원도경국장의 지휘 아래 감행된 전격적인 진압 작전 과정에서 경찰 측은 더욱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안경다리 쪽으로 투입되었던 영월경찰서 소속 순경들의 피해가 가장 심했는데, 2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영월경찰서 소속 순경 이덕수는 새벽에 차출 되어 무리한 진압 작전에 동원되었다가, 사북광업소로 통하는 안경다리 위에서 광부들이 던진 돌에 맞아 두개골 파열로 사망했다. 순경 진문규는 이덕수와 함께 사북 안경다리로 진입하던 중 돌에 맞아 두개골 함몰 골절 중상을 입었다. 사북역 방면으로 진입했던 원주경찰서 소속 경찰들도 머리를 크게 다친 김지형과 이한모 순경 등 총 13명이 피해를 입었다. 장성경찰서에서는 전날 홍응수 총경이 중상을 입은 데 이어, 22일 진압 작전 과정에서도 민회기 경장이 전신타박 및 좌수지 골절상을 입는 등 11명이 부상을 당해 장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횡성경찰서에서는 김영복 순경 등 11명이, 홍천경찰서에서는 최재학 순경 등 11명이 각각 피해를 입었다. 그 밖에 정선경찰서 소속 경찰들도 전순종 순경이 뇌수술을 받는 등 8명이 공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건 당시 정선, 영월, 원주, 장성, 횡성, 홍천, 평창 등 인근 7개 경찰서에서 400여 명의 경찰들이 차출 되어 무리한 진압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총 7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진압 경찰의 5분의 1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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