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이스라엘의 위선, 전쟁광 앞에 중립은 없다 | Collector
이스라엘의 위선, 전쟁광 앞에 중립은 없다
오마이뉴스

이스라엘의 위선, 전쟁광 앞에 중립은 없다

휴전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든 말이다. 그런데 이번 중동에서는 그 말이 나온 첫날, 레바논 남부 스리파에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러 돌아온 가족이 이스라엘 공습을 맞았고, 한 살 반 아이 탈린 사이드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 날 이스라엘은 레바논 전역에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해 250명 넘게 숨지게 했다. 이쯤 되면 이스라엘은 휴전이라는 말에 제동을 거는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말에 더 자극받아 레바논을 더 철저히 파괴하려 드는 전쟁광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이토록 만만한 파괴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베이루트와 남부를 뒤흔드는 광기의 폭격 배경에는, 외세가 그은 경계와 종파적 권력 배분 위에 세워진 채 오래도록 흔들려 온 레바논의 취약한 형성이 놓여 있다. 레바논은 처음부터 하나의 민족이 자연스럽게 결속해 세운 나라가 아니었다. 오스만제국 해체 뒤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나누는 과정에서, 프랑스가 1920년 베이루트와 해안, 베카를 묶어 만든 식민 설계의 산물이었다. 국가를 묶는 원리도 통합이 아니라 배분이었다.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는 방식이 국민 협약과 타이프 협정을 거치며 굳어졌다. 레바논은 처음부터 하나의 의지보다 종파 간 균형으로 버텨 온 나라였다. 그럼에도 베이루트는 한때 아랍 중동의 경제, 지성, 문화의 중심이었다. 1952년부터 1975년까지 베이루트는 권위주의와 군사주의가 지배하던 주변 지역과 달리 상대적 자유와 금융, 관광, 언론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중동의 파리'라는 별명이 붙은 까닭은 바로 이 화려한 개방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개방성은 곧 취약성이었다. 1975년 내전은 국가의 약화와 민병대의 성장 속에서 터졌고, 시리아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해방기구까지 개입했다. 전쟁은 1990년에 멈췄지만, 국가는 회복되지 않았다. 레바논은 다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이어 붙여진 채 남았다. 헤즈볼라는 바로 그 틈에서 등장했다. 이 조직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 조직이지만, 동시에 정당이고 복지망이며, 레바논 안에서 오랫동안 '국가 안의 국가'처럼 기능해 온 병행 권력이다. 단순한 외부 대리 세력도 아니고, 레바논 전체를 대표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실패가 낳은, 또 하나의 권력이다. 지금 레바논에는 공식 국가도 있다. 조제프 아운 대통령과 나와프 살람 총리가 이끄는 새 권력은 헤즈볼라와 동맹 세력이 정부에서 결정적 거부권을 갖지 못하게 했고, 무너진 국가 제도와 재정을 다시 세우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금융 붕괴, 베이루트항 폭발, 전쟁 피해가 겹친 나라에서 국가는 아직 헤즈볼라를 압도할 만큼 강하지 않다.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