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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욕심 생기는 한시, 이 봄에 딱이네 | Collector
필사 욕심 생기는 한시, 이 봄에 딱이네
오마이뉴스

필사 욕심 생기는 한시, 이 봄에 딱이네

경북 구미시 유학길 593-31(선산읍)에 금오서원이 있다(지난 12일 방문). 흥선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 때 없어지지 않았던 47개 서원 중 한 곳이다. 1572년(선조 5) 길재를 기리기 위해 금오산에 건립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1602년 현 위치에 재건했다. 금오서원의 강당과 사당은 국가 보물이다. 두 보물의 공식 이름은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正學堂)'과 '구미 금오서원 상현묘(尙賢廟)'로, 상현묘의 '묘'는 사당을 뜻한다. 상현묘에는 길재·김종직·정붕·박영·장현광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고려 유신 길재는 '충의'의 화신 야은 길재(1353년, 공민왕 2- 1419년, 세종 1)는 고려 말·조선 초의 유학자이자 문신이다. 이색의 문인인 길재는 고려 왕조의 명운이 다할 것을 예견해 일짝 벼슬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했다. 즉 정치적 업적을 크게 남긴 바 없지만 패망해가는 고려에 대해 절의를 지켰다는 점에서 그는 조선 지식인들에 큰 감명을 남겼다. 대체로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삼은으로 통칭되며 충의(忠義)의 화신으로 인식된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개성은 고려 오백 년 동안 왕도였다. 궁궐이 있는 서울이라면 사람과 재화가 풍성하게 넘쳐야 한다. 하지만 길재는 혼자서 말 한 필을 타고 쓸쓸하게 도성을 배회하고 있다. 산천은 옛날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데, 학문과 지위를 뽐내던 인물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없는가. 다들 이성계 권력에 빌붙었단 말인가. 아아, 고려 500년 태평성대가 흘러간 꿈만 같구나. 부관참시로 기억되는 사림 영수 김종직 김종직은 길재로부터 이어지는 사림의 맥을 이은 영남 사림파의 영수이다. 김종직은 세조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글을 남김으로써 연산군에게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가 양성한 많은 제자들은 뒷날 조선 정계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그들을 '사림파'라 한다. 김종직은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다. 불 피우지 못하는 한식에 봄 일도 많다(禁火之辰春事多) 꽃내음 살피는 것도 농가의 할 일이지(芳菲點檢在農家) 비둘기가 꾸우꾸우 산사나무 잎에서 울고(鳩鳴穀穀棣棠葉) 나비는 느릿느릿 장다리꽃에서 날고 있다(蝶飛款款蕪菁花) 비둘기가 산사나무 잎에서 우는 것과 나비가 장다리꽃에서 날고 있는 것은 지금 그렇게 해야 할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농부도 봄을 맞으면 그때 꼭 해야할 일들이 있다. 옛날에는 그것을 시무(時務)라 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얼굴을 씻어야 하고, 젊은 시절에는 공부를 해야 하고, 나이가 들면 세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다운 삶이다. 의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은 정붕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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