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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이 죽어갈 때 옆방에서도 물고문 있었다 | Collector
박종철이 죽어갈 때 옆방에서도 물고문 있었다
오마이뉴스

박종철이 죽어갈 때 옆방에서도 물고문 있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취조실에서 스물 두 살 청년 박종철이 차가운 물속에서 생을 마감하던 그날, 전두환 정권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희대의 거짓말로 이 죽음을 덮으려 했지만, 진실은 복도를 타고 세상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촉발하며 역사를 바꿔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시각, 그 남영동 대공분실에 또 다른 청년들이 박종철에 앞서 연행되어 박종철과 같은 고문을 받고 있었다. 자칫 또 다른 박종철이 될뻔했던 이 청년들은 다행히 죽음을 피해 갔지만 그들이 겪었던 고문의 후유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기자가 단독 입수한 신미란씨의 1987년 당시 수사 기록과 공판 조서에 따르면, 박종철이 죽어가던 그 시각, 같은 층의 또 다른 취조실에서도 똑같은 수법의 비인간적인 물고문이 자행되고 있었다. 박종철의 비명이 문틈을 새어 나오던 그 장소에서, 청년 신미란 역시 '조작의 덫'에 걸려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왜 남영동으로 끌려갔나 신씨가 남영동 대공분실의 목표물이 된 이유는 1986년경부터 서울 성수동, 경기도 부천시·시흥시 등 공단 지역에서 노동 야학 교사로 활동하면서 한편으로는 학원 자율화 운동 및 직선제 개헌 쟁취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청년 대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당시 불같이 피어오르던 노동운동과 정권에 대한 불만을 잠재울 표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연행 당시 경기도 시흥시 소재 '작은자리'라는 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신씨는 1987년 1월 11일부터 22일까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은 뒤 '국외 공산 계열의 활동에 동조하여 반국가단체인 북괴를 이롭게 했다'는 내용으로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987년 1월 14일의 기록, 박종철이 죽던 날의 압수수색 신씨의 기록 중 가장 먼저 눈이 갔던 것은 바로 압수조서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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