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바쁜 아침 출근 준비 중이었다. 식탁에 앉아 간단하게 차린 아침을 먹는데 스피커에서 AKMU(악뮤)의 새로운 앨범 중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슬픔도 아름다운 마음이니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라는 노랫말에 분주하던 손길이 멈췄다. 들고 있던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 사람의 목소리는 달랐다. 가수 이수현에게 햇빛도 사람도 그 어떤 세상과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라 더 그랬을까? 오랜만에 듣는 수현의 목소리는 반가움 그 이상이었다. 사람들은 슬럼프를 이겨내고 등장한 그녀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어쩐지 내게는 단순히 어려움을 이겨낸 후 짠 하고 등장한 가수의 그것만이 아니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는 것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까? 있어야 할 자리로 다시 돌아와 준 그녀가 참 고마웠다. 오빠 이찬혁의 존재도 든든해 보였다.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고 우리에게 담담히 건네는 목소리는 더 넓고 깊었다. 마음을 쓰다듬고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화려한 기교나 탁월한 리듬만으로는 줄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을 두드렸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급기야 나는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2017년 겨울의 끝자락, 나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막막한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다시 살아감을 붙잡기란, 슬픔의 시간들을 아름다운 마음이라 부르기에는 힘든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섬을 선택했을 때, 과거보다 살아갈 내일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재활 과정을 보내고 끝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 시간을 함께 견뎌준 가족과 사랑하는 친구들은 꼭 이런 마음이었을까? 누군가는 극복함이라 말할 때, 그저 살아냄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시 복직하는 아름다운 결말로 빛이 되라고 이야기할 때, 어둠도 그늘도 다 괜찮다고 돌아가지 못해도 그저 여기 함께 존재함이 참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곁에 있었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너는 늘 빛난다고 말하던 다정한 손을 붙잡고 2019년 5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 시간을 딛고 지금까지 내 몫의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문득 AKMU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요즘 인공지능은 글을 탁월하게 써내는 것은 물론, 그림도 화가처럼 제법 잘 그려내고 수려하게 음악도 작곡해 낸다. 내가 만약 AI가 만들어낸 음악, 인공지능이 수려한 기교로 부른다는 노래에도 그 아침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까? 마음속 깊은 울림으로 지난 시간들을 보듬는 데까지 닿을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 옹호론자다. 시각장애인에게 AI 기술의 성장은 더 나은 삶의 질과 회복 가능성의 약속을 담보해 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의 성실한 또 하나의 눈이 생긴 것 같아서 인공지능이 똑똑해지고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내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출근 전, 내가 입은 옷의 색을 대신 설명해 주고, 보지 못하는 길을 먼저 찾아주는 존재. 인공지능은 어느새 일상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AI 옹호론자였던 나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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