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물관은 박제된 시간이라고들 말한다. 유리 진열장 안에 갇힌 유물처럼, 그곳의 풍경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쉽게 짐작한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의 봄은 그 짐작을 조용히 배반한다. 같은 자리, 같은 건물, 같은 유물들 사이로 계절은 끊임없이 다른 얼굴을 내민다. 지난 11일, 입구부터 반기는 것은 정갈한 화분에 가지런히 심긴 튤립들이다. 단정한 검은 화분들이 계단을 따라 줄지어 서서 화사한 꽃길을 열어준다. 그 길을 따라 오르는 이들의 뒷모습마저 따스한 봄의 풍경이 된다. 붉고 노란 꽃잎이 햇살에 투명하게 번지는 길을 지나며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진다. 꽃을 본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천천히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천 년의 미소 위로 흐르는 4월의 빛 그 꽃길 끝에서 지난 7일부터 전시를 시작한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 괘불도를 보기 위해 전시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2층 불교회화실에 들어서는 순간, 부처의 설법 현장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거대한 영산회상의 자태에 숨이 멎는 듯했다. 높이 솟은 괘불의 위엄에 압도된 채, 은은한 묵향 속 불보살의 미소를 차분히 둘러보고 나니 마음속에 경건한 울림이 차오른다. 다시 바깥으로 나선다. 문을 나서는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진다. 박물관은 더 이상 고요한 시간의 창고가 아니라, 살아 있는 계절의 한복판이 된다. 조금 더 들어가면 넓게 펼쳐진 거울못이 눈을 붙잡는다. 이름 그대로 수면은 하늘과 봄 풍경을 투명하게 투영하며 과거와 현재를 함께 비춘다. 거울못 한가운데, 비취색 지붕을 얹은 청자정이 햇살을 머금고 우아하게 서 있다. 바람이 스치면 수면 위로 잔잔한 물결이 일고, 햇살은 그 위에 부서져 반짝인다. 윤슬이 흩어지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 쌓인 소음들이 하나씩 가라앉는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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