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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왜 '극우 시대가 온다'라고 했나
오마이뉴스

나는 지금 왜 '극우 시대가 온다'라고 했나

- 조희연 선생이 낸 <극우시대가 온다: 햇볕정치와 공화적 민주시민교육>을 읽으면서, 저는 80년대 조 선생도 참여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연상했습니다. 정치혁신과 교육혁신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저는 이 책이 진보이론사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성찰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대담에서는 조희연 선생이 출간한 이 책의 진보이론상의 쟁점을 주로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특히 공화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기존의 좌파·진보이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논하고자 합니다. 조희연 선생은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진보진영에 새로운 인식을 제안해왔습니다. '아방타방'(我方他方)의 사유틀 안에 갇혀 있던 '우리 진영'의 문고리를 흔들기 시작했다고 보고 싶습니다. 최장집 선생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박정희의 긍정적 측면을 건드리는 '선도성'을 보여주었다면, 조희연 선생은 사회구성체 논쟁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진보진영을 향해 과거의 '그늘'에 대한 성찰과 열린 세계관을 지속적·체계적으로 주문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저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의 종합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의 집필 동기는 무엇인가요? 이 책의 서문에서 저는 80년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조희연 그리고 90년대 시민운동 및 민주개혁운동가로서의 조희연, 2014년 이후 10년 동안 교육감이라는 행정가로서의 조희연이라는 세 가지 '조희연'의 대화라고 썼습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는 느낌으로 이러한 경험들을 성찰적으로 반추하면서 민주진보의 인식틀과 전략론을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20세기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막이 올랐지만, 또한 20세기는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전자의 시각만 가지고 있고, 후자의 시각은 충분히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 되고 있는 한국의 전투적이고 역동적인 K-민주주의의 성취와 성공에 주목하지만, 저는 민주화의 '그늘'도 생겨났고, 우리가 산업화의 그늘에 저항하면서 성장했던 것처럼 극우 역시 민주화의 그늘에 의해 촉진되며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습니다. 사회구성체 논쟁도 그러했듯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투쟁의 이니셔티브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좋은 세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필요조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에서 '공화적 이니셔티브'도 병행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단순히 사회경제적·정치적 강자에 대항하여 약자 의식으로 투쟁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리더라는 인식 속에서 공존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의 시선은 기본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그러한 방향에 일치하지 않는 불철저한 이론이나 인식, 실천의 '개량적' 성격을 비판하는 지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노동, 환경, 젠더 등 다양한 주제에서의 진보 내지는 급진주의적 지향 모두가 그러한 기조 위에 서 있습니다. 물론 이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른바 '적'에 대한 공격만으로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러한 실천의 그늘도 직시하면서 이를 보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3-7제 인식론: '적'의 눈으로 우리를 비추는 여백의 힘 - 아마도 그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책에서 열린 사고의 비유적 표현인 '3-7제 인식'으로의 전환 제안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발로라고 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독선과 교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약한 상대주의(weak relativism) 혹은 약한 보편주의(weak universalism)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선생은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하는 일종의 '사상 전향'을 교조에서 또 다른 교조로의 전향으로 보면서 진보적 인식 및 전략틀의 확장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70%의 확신으로 싸우자'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의 정의를 향한 투쟁과 인식이 70%는 옳지만, 반대로 반대 집단의 주장이나 우리에 대한 비판이 30%는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의 여백을 갖자고 주장합니다. 이는 단지 30%에서 화합하거나 봉합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30%에 담긴 반대 집단의 합리성을 포착하여 우리의 인식과 전략의 확장 속에서 융해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풍부화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30%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반대 집단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상적으로 '적'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지요. 책에서는 '따옴표'를 친 의미에서의 '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저는 당연히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자고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적차원에서 널리 적대적 진영 정치의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른바 '적'이라는 표현도 사용했습니다. 이 점은 용어로서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서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만일 스탈린 체제 등에 대한 자본주의 진영의 비판을 부르주아적 비판이라고 본질주의적으로 재단하고 폐기해버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사회주의 체제 내부의 개혁 공간이 조금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일종의 극단성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고, 학계에서 말하는 본질주의에 대한 경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30%의 융해는 우리의 가치와 정책이 헤게모니적으로 확장되는 계기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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