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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46] 동학농민혁명군 전주성 입성 | Collector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46] 동학농민혁명군 전주성 입성
오마이뉴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46] 동학농민혁명군 전주성 입성

4월 27일이 밝았다. 날씨는 화창하였다. 이날 동학농민혁명군은 예상과는 달리 별로 힘 안들이고 호남의 심장부 전주성에 무혈 입성하였다. 홍계훈이 모든 병졸을 거두어 남쪽으로 내려가서 전주성은 텅 빈 상태에 놓여 있었다. 김문현은 전날 감사의 감투가 날아간 처지이고 후임자는 아직 부임하지 않아서 지휘체계도 공백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날 농민군은 물밀 듯이 전주성을 차지했다. 그리고 전봉준 등 지도부는 선화당에 자리잡고 호령했다. 전주성 안에 있던 관노·사령들은 춤을 추며 날뛰었다. 그들은 전봉준의 호령을 들뜬 마음으로 듣고, 이어 농민군을 이끌고 신바람이 나서 전주의 관아들을 안내했다. 농민군은 민활하게 움직여 모든 공공건물을 접수했다. 그들은 무기고에 들이닥쳐 무기를 꺼내왔고, 창고를 헐어 곡식을 실어 내왔고, 감옥을 부수어 죄인들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또 지도부의 강력한 지시에도 아랑곳없이 횡포를 부리던 양반·부호와 그 하수인인 영리 (營吏)들은 농민군과 관노·사령들에게 곤욕을 당했다. 농민군들은 곧바로 전주 전보국으로 달려갔으나 전보국원과 시설은 이미 철거된 상태여서 기물만 부수고 돌아왔다. 이로 인해 관변에서는 뒷날 김제의 전보국 시설을 이용하여 겨우 중앙에 보고할 수 있었다.(이이화, '전봉준과 동학농민전쟁②, 투쟁-반봉건 변혁운동과 집강소', <역사비평>, 계간8호) 정부에서는 전주성이 함락당한지 이틀이 지난 뒤에야 이 사실을 보고받게 되었다.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입성 광경을 <전주부사(全州府史)>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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