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1926년 8월 1일 오전 10시가 좀 넘은 시각, 일본 오사카 일동(日東)레코드 녹음실에서는 조선 음악가 두 명의 연주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윤성덕(尹聖悳)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그 언니인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尹心悳)의 목소리는 노래 도중 북받친 감정으로 심하게 떨렸다. 때문에 첫 녹음은 아무래도 사용할 수가 없어 원반이 그냥 폐기되었고, 다시 시도한 두 번째 녹음으로 겨우 마무리된 윤심덕의 노래는, 이례적으로 빠른 제작 과정을 거쳐 8월 하순에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조선은 물론 일본에서도 사회적 파문이 크게 일었던 노래, 노래를 부른 가수이자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윤심덕은 정작 들을 수 없었던 노래, 녹음 사흘 뒤 윤심덕이 바다에 투신하는 바람에 그의 유서가 되어 버린 노래, 바로 <사(死)의 찬미>다. 100년 전 윤심덕이 세상에 남기고 간 노래 <사의 찬미>는 한동안 대중의 뜨거운 관심 대상이 되어 6년 동안 누적 음반 판매량이 만 3천 장을 넘었다고 한다. 조선어 음반이 만 장 넘게 팔리기는 <사의 찬미>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후 다른 가수가 부른 <사의 찬미> 음반도 1932년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단순한 리바이벌을 넘어 윤심덕과 <사의 찬미> 자체가 다른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는 경우도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한 <사의 찬미> 탄생과 변주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으면서도 알찬 전시가 지난 4월 13일에 시작했다. 아르코예술기록원에서 넉 달 간격으로 진행하는 연속 전시 <원 테이블>의 여섯 번째 순서, <사의 찬미, 100년의 변주>다.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2층에 마련된 전시는 7월 31일까지 계속되며, 평일에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