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곡우(穀雨, 4월 20일)를 코앞에 두고 우당탕 몸살이 찾아왔습니다. 봄비가 내려 땅을 윤택하게 한다는 넉넉한 절기지만, 저는 창밖으로 짙어가는 초록을 초조하게 바라보다가, 병원 약 털어 넣고 이불 동굴로 돌아오는 일만 반복했습니다. 약기운에 취해서인지 정말 많이 아파서인지 기운이 하나도 없이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일어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몸에 남은 모든 기운을 쥐어짜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렸습니다. 다가올 곡우에 가장 잘 어울릴 차는 뭘까 고심 끝에 안휘성 황산의 안개를 먹고 자란 황산모봉(黃山毛峰)을 꺼냈습니다. 청명 무렵의 특급 차처럼 날 선 화려함은 덜할지 몰라도, 봄볕을 충분히 받아 넉넉하고 수더분해진 곡우 무렵의 차입니다. 다식으로는 며칠 전부터 완전 푹 빠져 매일 먹고 있는 투박한 쑥떡을 골랐습니다. 쑥을 충분히 넣어 검어 보이고 쌉쌀한 맛까지 장착한 쑥떡이 여린 녹차의 맛과 향기를 죽일까봐 약간 걱정은 됐지만 곧 기우였음이 밝혀졌어요. 황산모봉의 맑은 산 기운이 제법 다정하게 어우러지며 아픈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줍니다. 눈부신 새봄에 어울리는 차 봄의 신록을 닮은 연둣빛 찻물 속에 가라앉은 찻잎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문득 최고급 황산모봉을 감별할 때는 찻싹 곁에 붙은 작고 누르스름한 잎사귀, 이른바 황금편(黄金片)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찾아보니 이 작고 반짝이는 금빛 조각의 정체가 다름 아닌 여엽(余叶, 남은 잎)이라고 하더군요. 지난해에 맺혀 미처 자라지 못한 싹이 추운 겨울 동안 웅크린 채 견뎌냈다가, 마침내 따뜻한 봄이 오자 연두색 새싹 곁에 묻어서 함께 피어난 첫 잎이라는 것이지요. 지난해의 고단했던 시간과 올해의 눈부신 새봄이 '황금편'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찰싹 달라붙은 셈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 황산모봉에도 발견되지 않을까 싶어 집게로 마른 찻잎을 요리조리 헤집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반짝이는 금빛 조각이 숨어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운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유쾌했던 '나만의 황금편'이 떠올랐거든요.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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