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부정선거 책임자를 엄중 처단할 것'으로 시작되는 청주대학교 교수단의 성명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학생들의 4·19혁명 구호가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정·부통령 선거 재실시", "이승만은 하야하라"였음에 비추어 볼 때 말이다. 부정선거 책임자와 경찰관 및 폭력배 처벌,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며 곡학아세하는 사이비 학자를 학원으로부터 추방하라"는 교수단의 주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혀 새로운 주장이 있었다. 청주대학 교수단의 성명서 "공직을 이용하여 부정 축재한 자는 고하를 막론하고 중형에 처하라", "과도내각 조직에 있어서는 양심적이고 과감성 있는 재야 인사를 널리 등용하라"는 이러한 주장은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을 뛰어넘어, 다가올 제2공화국에서의 정치·행정·교육 운영 시스템에 대한 초보적인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 4월 27일 청주대학 교수단 성명서가 발표되기 이틀 전인 4월 25일, 서울에서 전국 27개 대학 교수단의 가두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에 이정규 청주대 학장이 참여했다(<청주대학보> 제37호, 1960.5.6). 즉 청주대학 교수단 성명서는 전국 대학 교수단의 시위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특히 이정규 학장의 정치적 소신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사퇴 성명은 새로운 국면을 조성했다. 이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고, 혁명 세력은 제2공화국의 주체 세력으로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하지만 4월 혁명을 주도한 세력인 학생과 시민들은 혁명을 지속시킬 만한 정치적 비전과 조직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지역일수록 그 정도가 심했던 것으로 충북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충북 지역 4월 혁명의 주체 세력은 고교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대통령 사퇴 성명을 전후로 모금 운동과 선무반 활동에 돌입했다. 학생들은 선무반을 조직해 치안 질서 확립에 참여했다. 청주학생연합선무회(회장 최춘원)에는 청주시 내 중·고등학생, 청주대, 충북대생 180명이 참여했다. 선무반은 경찰차를 제공받아 치안 유지와 교통정리, "치안에 협조해 달라"는 선무 방송과 거리 청소를 했다. 선무반 활동과 더불어 4월 혁명 희생자 돕기 모금 운동이 전개되었다. 충북에서 최초의 모금 활동은 4월 24일 청주여상과 충주고 학생들이 시작했다. 4월 25일에는 청주시 내 7개 조의 가두 모금반과 2개 조의 순회 모금반이 구성되었다. 모금반에는 청주 시내 중·고·대학생이 참여했고,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상 학생 위문금 모금'이라는 완장을 차고 모금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도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모금에는 각계각층이 참여했는데,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5월 1일 청주 시내 석교초등학교 전교생이 각 10환씩 모금을 했다. 이승만 하야 이후 행정과 치안의 공백 이승만 대통령이 사퇴한 직후 경찰과 행정 체계는 불안정했다. 4월 27일 정인택 충북도지사는 사임 의사를 표명했고, 청주시장 한정구도 사표를 정 지사에게 제출했다. 문학동 경찰국장, 김상기 사찰과장, 주봉관 청주경찰서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경찰 최고 수뇌부의 잇따른 경질과 사퇴로 일선 경찰들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충북 지역은 4월 혁명기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지만 치안 공백은 어쩔 수 없었다. 반공청년단 충북도단부는 간부진의 총사퇴 결의를 추진했다. 반공청년단 충북도단 훈련부장 김종호가 '국민들이 증오의 눈으로 이 단체를 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 단체를 해산하는 것이 옳다'고 4월 27일 표명했다. 김종호는 이날 충북도단장 송경섭을 방문해 이와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충북신보> 1960.4.28).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학생, 교육계·사회 인사 등 지역 유지들은 시국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충청북도 시국수습대책위원회는 4월 30일 오후 2시에 결성되었다. 이종대 임시의장은 7인 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가 시·군 수습위원회 측과 실제적인 사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청주대생 김현수·박종희, 충북대생 최원춘·정혜열도 시국수습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대책위원회의 활동은 다음과 같았다. - 5월 3일 오후 10시경, 청주 시내 모충동에서 학생복을 입은 청년 약 25명이 전 자유당 재정부장 최아무개씨가 경영하는 기와공장에 나타나 기와 50여 장을 파괴하고, (중략) 경찰과 시국대책위에서 진상을 조사 중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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