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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0] 동학군 고립무원 상태... 정부 이간책도 | Collector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0] 동학군 고립무원 상태... 정부 이간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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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0] 동학군 고립무원 상태... 정부 이간책도

정부에 폐정개혁을 요구하며 전주성을 점령하고 관군과 대치하고 있던 동학군 지휘부는 정세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원세개를 통해 청국에 출병 청원의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동학농민군이나 새로 부임하여 삼례역에 머물고 있던 전라감사 김학진에게는 서로 상충되는 고충이 있었다. 동학군의 경우, 기대하던 북접의 호응이 없었고 완주싸움의 패배로 농민군의 동요가 일어났다.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면서 성내의 양곡이 바닥나고, 지방 농민군의 호응도 없었다. 당시 동학교단은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2대 교조 최시형의 북접이 장악하고 있었다. 북접은 이때까지도 남접의 무장혁명을 지원하지 않았다. 남접 지도부는 전주성을 점령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외부와 차단됨으로써 오히려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또한 농번기가 되면서 농민들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 데다, 청군의 출병 소식에 이어 일본군도 출병한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농민군 진영은 크게 동요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김학진의 경우는, 조정의 압박이 갈수록 심해졌다.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거나 화해의 방도를 강구하여 해산조처하라는 압력이었다. 전주성은 조선왕조 선대의 본향이라 함부로 대포를 쏘아 댈 처지도 못되었다. 그래서 김학진은 동학농민군 지휘부에 밀사를 보내어 자신의 뜻을 전하고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맞서 지휘부는 <소지문(訴志文)>을 보내어 자신들의 뜻을 전하였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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