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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편한 사람, 전화가 불편한 사람... 왜 그럴까 | Collector
전화가 편한 사람, 전화가 불편한 사람... 왜 그럴까
오마이뉴스

전화가 편한 사람, 전화가 불편한 사람... 왜 그럴까

"전화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카톡, 전화, 이메일 등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한 소통 방식에 대한 콘텐츠를 보았다. 작가 박상영은 "전화는 때때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내 영역이 침범당하는 느낌"이라 했고, 가수 이적은 "갑자기 누군가가 내 방 문을 확 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받았다. 이메일은 다르다고 했다. "1층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느낌"이라고. 내가 열어 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콘텐츠를 보며 좀 부끄러워졌다. 나는 여전히 전화가 편한 사람이다. 작은 화면의 키보드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것보다 목소리로 말하는 게 편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방 문을 허락도 없이 벌컥벌컥 열어젖혔던 걸까. 1990년대 초반, 십대의 나이에 러시아에서 한동안 머무른 일이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의 소통 수단은 편지였다. 부치고 나면 한 달은 기다려야 했고, 분실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전화를 하려면 우체국에 가서 먼저 예약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예약된 날짜와 시간에 다시 우체국으로 가서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이름이 불리면 지정된 부스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고, 거기엔 이미 연결된 가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는 연결도 어려웠지만 요금도 비쌌다. 기껏해야 5분이었다. 처음에는 전화통을 붙들고 내내 울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울다가 끊기는 전화. 할 말은 태산인데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다음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서 끊어야 했던 전화. 그 시절 전화 한 통은 연결 그 자체였다. 살아 있다는 확인, 보고 싶다는 고백, 잘 지내고 있다는 안도… 전화가 그 모든 것을 실어 날랐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비슷한 장면들이 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고, 집전화는 온 가족이 공유하던 시절, 그때 전화는 사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기다림 끝에 겨우 닿는 것, 그래서 더 간절했던 것이었다. 동기적 소통과 비동기적 소통 언어학에서는 소통 방식을 시간의 관점에서 나누기도 한다. 동시에 반응해야 하는 동기적 소통과 시간을 두고 답할 수 있는 비동기적 소통이다. 전화는 전자, 문자와 이메일은 후자에 속한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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