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4월 21일은 강원도 정선의 사북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날이다. 이 날은 4월에 우리가 기억하는 4.3이나 4.16, 또는 4.19와는 달리 아직 많은 사람에게 보편성을 얻은 기념일은 아니다. 어떤 일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거나 되살아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중요한 일인가 아니면 하찮은 일인가? 한 국가가 자기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3.1운동,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처럼 한 때 폄하 되거나 경시 당하던 사건이 중요한 역사로 재평가되고 복권되면 국민의 보편적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다. 4.3사건처럼 첨예한 논란을 딛고 국민의 공통 기억 속으로 서서히 편입되는 일도 있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오랫동안 감추어 있던 여러 진실이 드러나면서 편견이 바로잡히고 가치가 재조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이 국지적 규모에 그치거나, 그조차 누군가에 의해 왜곡·은폐된 채로 알려진 경우에는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 이 경우, 손쉽게 단죄 되거나 의미 없는 일로 치부 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기 쉽다. '1980년 사북'의 경우가 그렇다. '1980년 사북'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가?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 등 사회적 소외 계층이 연루된 몇몇 사건들처럼, 광부와 부녀자들이 연루된 사북사건은 신군부의 기억 조작이 꽤 잘 먹혀들었던 경우에 해당한다. 기억의 혼돈을 겪고 있는 민주화운동 기록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관련 사료를 수집·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이 있다. 행정안전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다. 이 기관은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을 정리한 오픈아카이브를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구축해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오픈아카이브에는 사북과 관련된 51건의 사진이 등록돼 있다. 그 중 1980년 사북사건 당시에 촬영된 사진은 모두 48건이다. 그런데 이중 20건의 사진 제목에 '사북사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사북사태'는 신군부가 이 사건을 폄하하기 위해 사용한 부정적 용어로서, 다른 곳도 아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다른 때도 아닌 2026년 시점에, 민주화운동으로 등재한 사건의 관련 사진을 설명하는 제목으로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그 사진들 중 태반은 "사북사태로 인해 깨진"(등록번호 : 00710243), "사북사태로 인해 엉망이 된"(등록번호 : 00710244), "사북사태로 인해 파손된"(등록번호 : 00710245), "사북사태가 일어나기 전 평화로운 마을"(등록번호 : 00710247) 등과 같은 제목을 달아 놓아서, 광부들이 일으킨 소요 사태 때문에 평온이 깨지고 질서가 망가졌다는 인식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같은 아카이브에서 '광주'로 검색되는 그 어떤 사진에도 이런 식의 표현은 없다. "참혹하게 찌그러진 광주고속버스", "불길과 연기가 솟아오르는 광주 중심가",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광주 문화방송" 등으로 똑같은 파괴의 현장이라도, 그것이 시민들이 일으킨 소요 사태 때문이라는 식의 단정적 서술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한편, 이 오픈아카이브의 사료 콘텐츠에 게재된 "사북사태의 진실, 동원탄좌시위조사보고서"에는 사북항쟁을 "광부와 그 가족 6000여 명이 어용노조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 항거하여 일어난 사건"으로 기술한 다음, 그 아래에 사북사건과 관련 없는 엉뚱한 사진을 올려놓았다. 이 사진은 <경향신문> 1980년 4월 28일 자 사회면에 게재되었던 것인데, 시기만 같았을 뿐 사실은 사북 광부들의 항쟁에 영향을 받아 발생한 인천제철 노동자들의 농성 사진이다. 당시 현대그룹 산하에 있던 인천제철의 사장은 훗날 대통령이 된 이명박이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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